묘한 광경이다. 12일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발표하는 장면이 희극적이란 것이다. 발표자인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당 대표를 맡고 있을 때 여당의 여의도 연구원은 “국정화제도는 교과서 공급을 독점하는 것으로 하나의 관점만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아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고 경쟁을 통한 교과서의 질적 수준제고를 어렵게 한다.”고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래전 일도 아니다. 불과 2년 전인 2013년 11월의 일이다. 배석한 차관도, 역사편찬위원장도 다 학자시절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 경력이 있다. 다들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반면에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77세)는, “나도 국정교과서를 쓰긴 했지만 국정 전환에 단호히 반대한다. 국정교과서는 이미 학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고 국사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아무리 강제성을 띠고 보급되더라도 결과적으로 현장의 외면을 받고 힘을 잃은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 집필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 한 쓴 충고인 셈이다. 교과서는 일반서적처럼 저자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이란 틀 안에서 검정에 통과해야 하는 책이다. 정부 스스로가 합격시킨 교과서를 놓고 좌편향 시비를 거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다. 정말 이 역사 교과서들이 좌편향이라면 이를 검증한 교육부 관료부터 처벌을 받고 퇴출되는 게 맞다.

그런데 과연 국정교과서를 제대로 만들 수나 있을까? 말 많았던 교학사 교과서도 2년의 준비과정을 가졌지만 400쪽 교과서에 수정할 오류가 2261건이나 나왔다. 이러니 전국에서 단 한 학교에서만 채택되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의 주장대로 하자면 국정교과서 제작기한은 1년밖에 시간여유가 없다. 양식 있는 학자들이 집필에 참여할 것 같지도 않고 한국사학자들을 어디에서 수입할 수도 없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경제, 사회과학 등의 학자를 근현대사 집필에 참여시키겠다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은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하겠다고 우기는 이유가 혹시 딴 데 있는 것은 아닐까? 때 아닌 이념 타령을 하는 것은 보수층을 결집시켜 다음 총선, 대선에 활용하자는 꼼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11일에 안철수 의원이 자청한 인터뷰 장면이 생각난다. 조목조목 당 주류에 대한 정치공세이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를 하루 앞둔 날에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니 생뚱맞다. 당내 권력 투쟁할 때가 있고 대여 투쟁할 때가 있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무리수를 두면 야당이 국민을 대표해서 나서야 한다. 약한 야당이니 이런 때일수록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맞다. 그런데 엉뚱한 소리만 하니 야당이 무능하다고 싸잡아 질타를 받는다. 안철수 의원은 교과서 국정화가 갖는 역사, 정치적 의미를 알고나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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