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오동동 뒷골목에 사무실을 둔 적이 있었다. 영업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니 큰 도로에다 번듯한 간판을 달 이유도 없었기에 골목 사무실에 입간판 달랑 하나 부치고 일했다. 퇴근하려 골목을 나서는데 맞은편에서 건장한 청년이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또 다른 깍두기 차림의 사내가 목례를 하고 스쳐 갔다. 이 청년들은 옆 사무실에 출입하고 있었는데 교도소 안 운동장에서 오다가다 본 건달들이다. 그 사무실엔 아예 간판도 없었다. 무자료 술을 유흥업소에 공급하는 게 업이니 간판이 있을 리 없다. 어느 날 그들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선생님, 분실 된 것은 무엇 없습니까? 어제 밤에 좀도둑이 들어서 우리 사무실을 털어갔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딘 줄도 모르고.”
“그래? 우리도 아침에 오자마자 불청객이 온 줄은 알았지만 없어진 것은 없는데.”
원래 손 탈만한 귀중품이나 돈은 없는데다, 조심해야 할 것은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들인데 이런 자료는 좀도둑이 탐낼 물건이 아니었다. 다음날 복도에 풋내 나는 청년 세 명이 손을 머리위에 얹고 꿇어 앉아있다. 한 눈에 봐도 제법 얻어 터졌는지 다들 얼굴이 붉게 부어 있었다.

양아치들이 건달들 사무실인지 모르고 덤볐다가 혼이 났던 것이다. 물론 경찰에 넘기지는 않았고 흠신 두들겨 패는 것으로 훈방(?) 조처했던 모양이다.  

 이 옛날 사건이 생각난 것은 요즘 국정원 해킹 소동 때문이다. 제일의 정보기관이라는 국정원이 해킹 방법을 구입한 업체는 ‘이탈리아 해킹팀’이다. 우리나라 1세대 보안전문가로 국내 최대 보안업체인 안랩의 연구소장을 지낸 강은성 CISO Lab대표는 ‘해킹팀’에 대해 ‘조폭이 회사를 설립해 불법무기를 만들어 판매하고 청부폭력을 휘두른 꼴’이라 비판했다. 강 대표는 ‘해킹팀’을 ‘조폭’이라 표현했지만 난 양아치라 여긴다.

해킹보안 관련업은 이미 하나의 산업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보안업체는 직원이 1만5천여 명에 달한다. 이에 비해 ‘이탈리아 해킹팀’은 직원이 5-60명에 불과한 영세업체이고 위키리크스에 폭로되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자료가 샅샅이 해킹되었다는 사실 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해킹을 전문으로 한다는 업체로서는 수준미달이다. 더욱이 이들이 거래한 나라들을 보면 선진국도 있지만 대다수는 독재, 불량국가이니 도덕성이나 상도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보안업체 중에 양아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양아치란 원래 자존심이 없는 자들이니 돈만 된다면 우리나라 해킹 내용을 역으로 다른 나라에 팔아넘기는 것도 서슴없이 할 것이란 생각이 문득 났다. 양아치 같은 심부름센터가 취득한 정보를 미끼로 의뢰인을 역으로 협박하는 사례가 왕왕이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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