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리처드 세넷 지음 | 유강은 옮김 | 문예출판사
“인터뷰에서와 마찬가지로 결국 우리는 자신의 배우자나 아이들, 직장 동료 등에 관해 상상했던 것이 실은 진실이 아님을 인식해야만 한다. 인터뷰에서나 일상적인 삶에서나 동일시의 ‘오류’를 치료하지 않은 채로 놔둔다면, 우리는 자기 참조적 이해라는 올가미에 사로잡히게 된다. (중략) 확실히 에릭슨은 한 마리의 매처럼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역시 나무토막 장난감으로 덤프트럭을 만드는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분명히 아이들은 그를 자기들 중의 한 명으로 오인한다. 그리고 그 역시 잠시 동안 자신이 늙은이가 아니라고 상상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듯 보인다.” 리처드 세넷,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유강은 옮김, 문예출판사, 67-68쪽.

미국의 유명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이, 그가 가장 최근에 쓴 『투게더』보다 10년 전에 쓰였단 사실은, 한 학자가 자신의 관심을 장기적으로 견지하며 이론을 구축해간다는 것의 ‘경이’를 새삼 상기시킨다. 한 주제를 평생을 두고 연구하는 세넷처럼 나 역시 10년, 30년 후에 한 주제에 깊은 성찰과 통찰을 가진 사람이 되는, 그런 꿈을 꾸곤 한다. 세넷의 이 책에서는 불평등, 협력, 존중, 장인 등의 그의 일관된 관심사가 등장하는데, 이후에 쓰인 『장인』, 『신자유주의와 인간성 파괴』, 『투게더』 등의 책은 이 관심사들이 심화된 책이었다.

계급 불평등에 대해 다룬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에서 특별히 내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인터뷰 방법론에 대한 그의 통찰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연구의 기술적 방법론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관계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세넷은 이 책에서, 그가 초보 학생일 때는 미처 알 수 없던 방법론에 대한 어떤 통찰이 이후 시간이 흐른 뒤에 왔다고 쓰고 있다. 사물이나 동물이 아닌,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에서 자신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는 ‘자기 참조적 이해’라는 ‘오류’는, 초보 연구자가 빠지기 쉬운 위험한 함정이다. 주관적 입장과 관점이 배제된, 객관적 관점에 충실해야 할 연구 과정이지만, 연구자라는 개인 역시 결국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세넷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상대에 자신을 투사하는 연구과정에서의 ‘오류’는 때로는 그 연구를 망치기보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그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이다. 우리는 그 사람을 냉정히 객관화하기보다, 마치 자기 자신인 듯 서로를 혼돈할 때 상대를 더 잘 알 수 있기도 한다. 그 사람이 되어볼 때, 그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며, 결속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럴 때의 오류란, 매력적인 ‘오류’일 것이다.

이영롱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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