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한창이던 흉흉한 시절에 아주 조그만 소포 꾸러미가 왔다. 열어보니 시집이 한 권 들어있다. 조영옥 시인이 보낸 시집이다. 금년 6월 1일자 인쇄된 따끈따끈한 시가 송송히 박혀있다. 그 詩들은 마치 ‘하 수상한 세월’을 우습게 여기듯 천연덕스럽게 내 서재에 내려앉았다. 조 시인은 민주화 운동 세력에게 있어서는 척박하기 그지없는 경북에서 여러 번이나 내리 대장을 역임했던 여장부다. 물론 조영옥은 시인이다. 그런데 몇 년이나 토론하고 마시고 같이 어깨 걸고 악을 쓰고 군부세력에 저항 하였지만 난 그렇게 격식을 갖추어 시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당시 우리에게 몰아 친 엄혹한 세월 속에 詩란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詩心을 가진 사람들의 순수함에서 뿜어 나오는 투쟁의 열정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시절이어서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시인 조영옥이 아니라 경북 대장 조영옥이었던 것이다.

그런 조영옥이 시집을 냈다, 그것도 10년 만에. 이제 환갑 진갑 다 지나고 손자, 손녀 재롱을 받고 안방에 앉아있어도 될 할매가 새삼스럽게 시집을 내서 옛 동지들에게 보낸 것이다. 거실 소파에 이 시집을 두고 매일 한두 편씩 읽었다. 시인이 10년 동안의 생각을 벼리고 깍은 시를 어떻게 단 숨에 읽어 내릴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살금살금 혀로 맛을 보듯이 천천히 한 달 동안 읽었다. 시인은 어린 시절의 추억도 잔잔하게 노래했고, 젊은 한 때의 열정도 삐죽 드러냈다. 그러면서 ‘할미꽃 두 송이’에서는 노모에 대한 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한쪽 무릎 관절염인 내가/엄마와 죽이 맞아 느릿느릿 걸어간다/아흔을 바라보는 엄마와/ 환갑을 바라보는 딸이/ 다시 손을 흔든다/ 엄마의 뒷모습 /흐린 눈으로 좇는다.

‘일만 칠천 원’에서의 시 몇 구절이다. 어느 일요일 남편과 둘이 외식/ 목심 샐러드 스테이크와 피자 한 판/ 일인당 일만칠천 원/오십대 남자 새벽에 몸이 아파 119불러 병원 갔는데/밀린 치료비 일만칠천 원 내지 않으면/접수를 받지 않겠다하여 다섯 시간 미적거리다 쓰러져/급성 복막염판정 사흘 뒤 죽었다./일만 칠천 원. 시집의 제목도 ‘일만 칠천 원’이다.

시인은 틀림없이 충혈 된 눈으로 이 시를 원고지에 꾹꾹 적어내려 갔으리라. 몸은 세월에 묻어 시들어 갈지라도 정신이 풋풋하고 날이 서 있다면 아직도 청춘이다. 언젠가 시인은 경북 상근자들을 대동하고 삼천포로 MT를 왔었다. 그 때, “삼천포는 참 매력 있는 곳이에요. 한 한달 쯤 아무것도 안하면서 그냥 머물고 싶은 곳이에요.”라고 말했다.

시인을 다시 만나게 되면 정중히 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났다. “ 조 시인, 삼천포를 시로 노래해 주지 않겠소? 내 눈이 토끼눈 같이 되는 그런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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