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은 유명하다. 그가 대선 출마를 시사했던 해수부 장관 시절이다. 창원에서 상당한 규모의 대중 집회가 열렸고 초청연사로 축사를 하게 되었다. 원래는 나에게 연설 섭외가 왔었는데 주최 측에 내 대신에 노 장관 연설을 듣자고 설득하였다. 노 장관은 수차례 출마를 거듭한 정치인이고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웅변이 상당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출사표를 던진 노 장관의 입장에서는 감지덕지 고마운 일이었을 것이고 경남의 대중 입장으로서는 중앙 정치인의 달변을 듣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 될 터였다.

그는 연단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곁의 나에게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여유만만 한 자세였다. 난 속으로 ‘연설 요지를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초조하고 긴장되는 시간인데 역시 관록 있는 대중 정치인은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 차례가 되어 노 장관이 연설을 시작하였는데 테마가 ‘링컨 대통령’이었다. 잘 시작되는가 했는데 어느 순간 연설이 꼬이기 시작했다. 모인 수천의 대중들은 다 학교 교사들이었는데 링컨은 학교 문턱을 넘어보지 못한 독학한 사람이 아닌가? 갑자기 그 점을 깨달았던 모양이다. 결국 연설은 우왕좌왕하다가 끝났다. 추천한 나도 민망한데 당사자는 오죽하랴!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옆자리에 앉기에 살짝 이끌고 걸개그림 뒤로 빠져 나왔다. 당혹할 때 제일 좋은 약은 담배이니까. 같이 한 대 피우자고 했다. 담배 연기를 맛있게 뿜어내며 다소 진정이 되었는지 화제를 딴 데로 돌려 묻는다.

“이 선생님, 조언 한 번 구합시다. 요즈음 J일보가 터무니없이 시비를 거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참모들은 유력 언론과 싸워 좋을 일이 없다고 하는 견해가 많은데요?”

“장관님, 고름이 살 됩디까?”

내 조언이 도움이 되었는지 아니면 이미 작정하고 있었는지 바로 다음 주 노 장관이 J일보와 정면 승부를 벌인다는 보도가 크게 나왔다. 창원 연설이 대선 가도에 나선 그에게는 최초의 대중연설이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패한 연설이었을 것이다. 알고 보니 링컨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고 그 후 대중 연설에 자주 인용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고를 그대로 읽는 연사는 아니었고 대중과 교감하면서 연설하는 스타일이다. 독학한 링컨을 소재로 교사들과 교감하려니 난감하였던 것이다. 소재 선택의 실패였다. 장관 생활을 하느라고 그 때는 연설의 감을 잠시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금도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명 연설가이지만 그날은 정말 형편없었다.

오는 5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6주기가 되는 날이다. 늦은 봄날 오후 담배를 한 대 물고 하늘을 보는데 문득 명 연설가의 실패 에피소드와 함께 걸개 뒤에서의 대화가 생각났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유력언론이 아무리 떠들어도 밀고 나가는 뚝심 있는 정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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