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의 '문득'] 어머니의 밤샘
상태바
[이영주의 '문득'] 어머니의 밤샘
  • 이영주
  • 승인 2015.05.13 18: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산이 확실히 기울어 돌이킬 수 없게 되자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오랫동안 지역 유지였던 아버지 입장에서도 사천에 눌러 살기에 체면이 없기도 하였겠지만 진주로 옮긴 것은 어머니의 강한 의지였다.

어머니는 이제 고등학생이 된 넷째 아들과 막내아들의 공부를 위해 한 발짝이라도 학교 가까운 진주로 옮기자고 한 것이다. 어머니가 제일 먼저 취한 조처는 집안의 TV를 고방으로 추방한 것이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요술 상자인 TV가 자식들 공부에 있어서는 바보상자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한 번도 공부를 강권하지 않았다. 대신에 학습 환경 조성에 신경을 썼던 것이다.

막내는 불행히도 잠이 많아서 제삿날에도 자정을 넘기지 못해 제사를 지내는 중간에도 졸곤 했다. 그런 막내를 넷째는,

“그렇게 잠이 많아서 어떻게 합격 하겠노? ‘4당5락’도 모르나? 우리는 과외도 안 받는데!”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인 4당5락은 4시간 자면 합격이고 5시간 자면 낙방이란 뜻으로 쓰였다. 당시에도 거액의 족집게 과외가 있었고 그래야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다 했다. 가세가 기울어진 집안 형편에 과외는커녕 변변한 학원에도 다닐 형편이 아니었기에 넷째는 과외를 안 받는 데 대한 불안감에도 시달린 모양이었다.

시험 때가 되면 넷째는 밤샘을 선언하고 공부에 돌입하는데 사람 몸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가? 잠에 곯아떨어지고 난 다음날 아침이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마냥 투덜대고 자책하곤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고육지책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이 참으로 묘책이었다. 옆방에서 넷째가 공부하는 모습은 어머니에게는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허술한 블록 한 장으로 벽을 놓았기에 사위가 고요한 심야에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마저 귀에 다 담겼던 것이다.

넷째는 연필로 적어가면서 공부를 했는데 새벽 1시쯤 되면 싸각 싸각 연필 소리가 느려지다가 마침내 끊어져 버린다. 그러면 어머니는 시간을 보고 난 후 홀로 앉아 계속 뜨개질을 했다. 그리고 세 시간 남짓 지났다 싶으면 옆방에 가서 넷째를 깨우는 것이다. 그럼 놀라 깨어나서 잠깐 졸았다 여기고 새벽까지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는 밤샘을 무사히 치렀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으로 휘파람을 불며 학교로 갔던 것이다. 실제로 동생 대신 밤샘을 온전히 친 이는 어머니인데!

금년 어버이날은 각별했다. 119 신세를 두 번이나 진 어머니는 ‘노환이라 처방할 것이 없다’는 기막힌 처방만 받곤 했는데, 기적같이 소화기능이 다시 살아나 몇 달 만에 미음대신 밥을 드신 것이다. 서울서 내려와 언제나와 같이 형제간 중에 가장 인심 좋은 봉투를 내 놓는 넷째를 보면서 문득 오래전 어머니가 꼬박 새운 그 밤들이 생각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블라인드
댓글을 블라인드처리 하시겠습니까?
블라인드 해제
댓글을 블라인드 해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