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중사가 당혹한 표정으로 겸연쩍어하며 입을 뗀다.

“저, 어제 저의 집에서 도둑을 맞았습니다. 어떻게 잡을 수 없을까요?”

얼마 전 중사 진급으로 영외 생활이 허락되면서 박 중사는 읍내 민가에 방을 얻어 나갔다. 이제 비로소 직업군인으로서의 길에 접어 든 것이다. 부 사관들에게 있어서 임관 다음으로 기쁜 것이 영외자가 되어 민간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니 박 중사의 기분은 날라 갈듯 하였는데 나가자마자 흉사가 생긴 것이다.

“무슨 물건을 잃어 버렸소?”

분실된 것은 ‘카세트’였다. 1970년대 중반 카세트는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물건이었다. 더욱이 박 중사의 카세트는 스피커가 두 개 달려있는 것이었다. 이런 ‘투 스피커 카세트’는 읍내에서 가장 큰 ‘금성전자대리점’에서도 없었다.

얼마나 금지옥엽, 애지중지하였으면 부대원들 사이에는 ‘카세트’를 박 중사의 애인이라고 불렀을까? 이 귀물이 야근을 마치고 내려가니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밖에도 잃어버린 것이 더 있다. 의외의 물건들이다. 마루 밑에 있던 군용단화, 그리고 정모. 그 품목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첫 휴가를 나가는 김 일병이 입고나갈 약정복(공군들의 하늘색 군복)을 세탁해 널어놓았는데 사라져 버려서 야단법석을 떨었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박 중사 집에서 사라진 정모, 군용단화에 부대에서 사라진 군복을 합하면 온전한 군복 차림이 된다. 문제 해결에는 때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약간의 상상력과 추리력을 발동시킬 필요가 있다.

막상 범인이 노린 것은 카세트가 아니라 정모와 단화가 아니었을까? 그러다가 견물생심이라고 카세트가 눈에 띄니 덩달아 들고 가 버린 것은 아닐까?

“읍내에 명찰 가게가 하나 있죠? 가서 공군 명찰을 새로 맞추어 간 사람이 있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 오시오. 범인 이름이니까. 아, 장교용 은색 테도 함께 사갔을 거야.”

명찰 주인은 읍네 깡패 출신 방위병이었다. 녀석은 속초 아가씨와 사귀면서 공군 장교라고 속였다는 것이다. 당시 강원도 동해안에서는 아가씨들 사이에 공군장교가 인기 있었다. 처음 범행목표인 단화, 모자에만 그쳤다면 박 중사는 예사로 넘겼을 것이고 녀석은 영창에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번 4.29 보선에서 여당은 ‘성완종 사면의혹’물 타기로 확실히 재미를 보았다. 그런데 더 나갈 태세다. 문득 박 중사 카세트 도난 사건의 범인이 생각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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