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면 사천경찰서장.
“네가 남으로부터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들을 대접하라.”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황금률이라고 하는데, 이는 오랫동안 인간관계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윤리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논어의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하게 하지 말라”라는 공자님 말씀도 의미가 다르지 않다.

요즘 문제되는 이른바 ‘갑과 을’의 관계나, 예전에 흔했던 ‘며느리 시절을 잊은 시어머니의 횡포’ 또는 조직 안에서 ‘부하일 때의 기억을 상실한 상사의 독선적 행태’도 따지고 보면 같은 문제로, 자기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데서 빚어진다.

혼자 살아가는 특별한 세상이 아니라면 소통이 필수적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기 마련인 갈등과 충돌을 극복하고 협력과 평화로 가는 길을 소통이 만든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바꿔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타인의 처지를 살피고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타인의 입장은 무시하고 자신의 편의나 이익만을 앞세워 스스로 기껍지 않은 일들을 남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에 세상이 갈수록 어렵고 팍팍해진다. “네가 남으로부터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들을 대접하라.”라는 원칙이 소통 문제에서도 제1의 원칙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소통의 두 번째 원칙은, 나와 생각이나 행동 또는 습관이 다른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은 행동과 생각도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타인과의 소통에서는 생각과 행동에서 자기와는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장자에 나오는 다음 글이 충분한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옛날 노나라 임금이 바닷새 한 마리를 궁궐로 데려와 연회를 열었다. 술을 권하고, 궁중음악을 연주하고, 제사에 쓰이는 고기를 대접했다. 그러자 새는 멍한 눈빛으로 불안해하고 슬퍼할 뿐, 고기를 한 점도 못 먹고 술을 한 잔도 못 마신 채 사흘 만에 죽고 말았다.”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선호를 일방적으로 타인에게 적용할 때, 상대방은 바닷새처럼 멍하고 슬퍼하고 불안해할 수 있다. 소통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상대가 자기와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그 ‘다름’마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소통 문제는 이미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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