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만에 전화해온 벗은 49년 전 중학교 1학년 때 그 광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선거였다. 사천 촌놈이 J중학교 급장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된 것은 순전히 ‘육거리 패거리’때문이었다.

진주 역전 동네였던 육거리는 거친 동네였고 그 동네 아이들 역시 사나웠다. 학급엔 육거리패 대장인 윤한섭과 그 동네 출신 부하 두 명이 있었고 시내 병원 집 아이가 물주 역할을 자청하고 있었다. 나의 출마 슬로건은 ‘평등한 학급!’이었다. 이 평범한 구호가 뜻하는 바를 우리 학급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다 같은 학생인데 ‘누구는 때리고 누구는 맞아야 하는가?’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기점으로 학급에서 묘한 긴장 기류가 흐르게 되었다. ‘패거리’도 선거에서 나타난 거역의 민의를 감지하고 있었다. 선출된 신진 합법권력과 폭력을 기반 한 기성권력과의 불안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먼저 치고 나온 것은 역시 ‘패거리’였다. 위력 시위를 할 작정이었던지 학교에서 가장 약한 상대를 희생양으로 골랐다. 유일한 처녀 선생님이었던 문법 교사다. 아이들에게 회초리는커녕 큰소리 한 번 내 지르지 못하는 선생님의 문법 수업 학습 분위기는 난장판이었다. 그날따라 작심했는지 패거리들의 난동은 극에 달했다. ‘학습 분위기 진작’이란 이번 주 학급회의의 결의를 보란 듯이 깨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저들의 행패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다시 과거로 돌아 갈 것이 자명했다 ‘조용히 하자’는 내 말소리는 소동에 가뭇없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이는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 교탁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선생님도 아이들도 놀라 일순 조용해졌다. 교실 앞 구석에 처박혀 있던 부서진 걸상자루를 집어 든 후 패거리들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윤한섭 나와! 이 아무개 나와! 김 아무개, 박 아무개 나와! 안 나와? 그럼 내가 가지!”
먼저 윤에게 다가가 사정없이 걸상 다리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윤은 저항도 못하고 책상위에 엎드려 묵묵히 맞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네 명의 자리를 저벅저벅 찾아가 치도곤을 먹였다. 패거리들은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벌벌 떨면서 기다렸고 이 아무개는 때리기도 전에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지만 내 몽둥이찜질에는 예외도 자비도 없었다. 육거리 패거리들은 그 사건이후 개과천선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약자에 대한 횡포를 가장 경멸해왔다.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서는 선별 복지하자는 소리가 크지 않더니만 아이들 가슴에는 점심밥을 갖고 잔인한 낙인을 찍는다. 투표권도 없는 지극히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문득 50년 전 그 교실이 생각난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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