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맞아 서민들은 심심파적으로 연말 운세 풀이를 해 본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에서 본격적으로 심층 취재한 것은 별로 본 기억이 없는데 이번에 보았다. 손석희 앵커가 몸담고 있는 TV에서였다. 이름난 역술가와 점쟁이를 전국적으로 찾아다니며 검증하는 과정을 화면에 담았는데 여러 차례 검증 끝에 객관적으로 선정된 ‘용한’사람은 단 두 명의 여성 무속인 뿐이었다. 용하다고 소문난 숱한 역술인들을 취재했지만 다들 중도 탈락했던 것이다.

이 프로를 보면서 문득 기억의 뒤안길 깊은 곳에 가라 앉아 있었던 젊은 시절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강원도 바닷가 레이더 부대에 근무하고 있었던 청년 장교 시절이다. 부대 근처에 승려는 없고 무당 모녀가 거처하는 조그만 사찰이 하나 있었는데, 부대를 오갈 때 다리쉼을 할 겸 들리곤 해서 무녀와 친숙해져 있었다.

어느 날 박 중위가 나에게 무녀에게 무엇을 ‘물어보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고 한다. 그 시절 청춘들의 고민이 무엇이 있겠는가? 중늙은이 무녀는 동자 령을 불러내고 무녀는 빙의해 동자의 말을 대신 한다.

“윙 윙 소리가 나고 번갯불이 번쩍번쩍하는데 옆에 그 처자가 살고 있네? 김치국 마시지 마! 딴 사람 생각하고 있어, 인연이 없고만, 헤 헤.”

무참해진 박 중위의 얼굴이 창백해져 하얗다. 무녀가 옆에 앉아 있는 나에게 물었는데 굳이 답을 구하지도 않는 기색이다.

“총각 장교님도 봐 드릴까? 고향이 어디에요? 사천? 아, 경남 진주 밑에 말이지요!”
무녀가 동자령에게 가라고 하니 동자는 멀다고 칭얼거렸고 무녀는 ‘가 보라고’ 다독였다.

“멀리가기 싫어. 힘들잖아. 에이, 이번만 간다. 어, 바닷가로 왔어, 와 큰 배가 많이 있어, 부..부산이라는데? 어떤 사람이 너의 문서를 찢어 버리려 하네. 빨리 말려! 몰라, 무슨 문서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한 기수 위인 과묵한 박 중위는 평소에 아가씨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한 숨을 쉬며 말하기로 짝 사랑하는 그 여인이 강릉 발전소 옆에 살고 있단다. 용하다는 생각에, 무녀가 말한 아니 동자령이 말한 그 문서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고 마침내 알아냈다. 그 문서는 교사 자격증이었던 것이다. 당시 경남 도교육위원회(현재 도교육청)은 부산에 있었다. 공군에 있는 것이 취합되지 못해 연락 두절로 분류되었고 그 해에 교사자격증을 폐기 시킬 요량이었다는 것을 전화로 확인했다.

아마도 그 무녀, 아니 동자령이 아니었다면 교직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내가 굳이 폐기된 자격증을 되살리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전혀 다른 삶의 행로를 걸었을 것이다. 오래 전에 고인이 되었을 터이지만 그 무녀라면 이번 TV검증에 어쩌면 통과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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