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교사들이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나섰고 정권은 전교조 파괴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형태는 전교조 가입교사들의 탈퇴 강요로 나타났다. 당시 국무총리는 마산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이였는데, 급히 고향으로 내려와서 총각교사였던 새까만 고교 후배를 숙소로 불러 회유했고 그 교사는 탈퇴각서를 제출했다. 총리가 솔선수범하여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 지방까지 직접 내려가야 할 정도로 시급하고 중했던 것이다. 그 총각으로서는 까마득한 하늘같은 선배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위를 지닌 국무총리의 강권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시점 나는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처음 검사에게 불려 나갔을 때 호송수칙에 따라 수갑을 차고 포승에 꽁꽁 묶여 나갔는데 검사는 호송 교도관에게 호통을 쳤다.

“누가 선생님을 이렇게 묶어 오라고 했어? 앞으론 정중하게 모셔 와!”

수석 검사인 1호 검사가 공안 검사였는데 할 일이 정말 없는 모양이었다. 매일 오후 일과를 나와 노닥거리는 것으로 보냈으니. 동갑내기인 검사는 나와 마찬가지로 골초였는데 둘이는 매일 오후 그의 담배를 한 갑씩 태우면서 이런저런 세상사를 논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 서로 친숙해졌을 때 친절한 검사는 다정하게 권유했다.

“선생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다 이해 합니다. 선생님이 바라는 민주교육을 실현 하기 위해서는 활동을 하셔야지,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어서는 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경험 안 해봐 잘은 모르지만, ‘죽는 것 빼고 제일 힘든 것이 감옥살이’라고 하더군요. 지금 당장 결정하시라는 것은 아니고 오늘 우리 집에 같이 가셔서 소주라도 한 잔 하시죠?”

“검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감옥살이는 사람 뿐 아니라 산 짐승이라도 할 짓이 아니군요.”

“하아, 그럼, 오늘 당장 같이 가실까요?”

“말씀대로 댁에 가서 술이라도 한 잔 나눈다면 전 탈퇴각서에 날인을 할 것 아닙니까? 그럼 바로 석방도 되겠지요. 그런데 이 못난 사람을 수천 명의 교사들이 지도자로 삼고 따랐는데 그 분들을 어떻게 다시 보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저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데 아직 죽을 각오는 되어 있지 않군요. 징역살이 적응도 해야 하니 이쯤에서 끝내시죠.”

총리까지 전교조 교사 탈퇴 작업에 나설 지경이니 검사도 공명심이 동하기도 했겠지만 깨끗이 단념했다. 조서 작성에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고 검사는 그 후 다시는 부르지 않았다. 당시 총리의 출장 일화와 검사와의 대화가 문득 생각난 것은 설 직전에 새 총리가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만약 세월을 돌려 소위 ‘불량 완구 종합세트’라고 희화화 된 신임 총리가 앞의 그 총각교사를 불러 탈퇴를 강요했다면 통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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