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이란 상대적인데 우리는 7남매간이니 비교 대상은 풍부했다. 제일 먼저 인지한 열등감은 ‘코’ 때문이었다. 식구들은 내 코를 ‘들창코’라고 놀려댔다.

형의 코는 오뚝 얼굴 한가운데 제대로 붙어 있었는데 내 것은 펑퍼짐하게 낮은 코이면서 콧구멍이 환히 보였다. 부엌일을 봐주던 먼 친척 누나가 슬쩍 내 고민 해결법을 처방해 주었다.

“통시(화장실)에 앉아서 자꾸 코를 잡아 댕기면 코가 커지고 오뚝해 진데이!”

사람들 몰래 냄새나는 재래식 변소를 틈만 나면 들락거리면서 코를 잡아 댕겼는데 효과가 있었는지 세월이 지나면서 들창코란 별명은 사라졌다.

코에 대한 고민이 사그라지자 산 넘어 산이라고 이제는 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내 머리가 돌대가리’란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막내 동생 때문이었다. 일찍이 신동이라고 소문난 형은 형이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여덟 살이나 어린 막내가 보통내기가 아닌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막내에게 장난삼아 ‘오늘날짜 신문’을 가져 오라 심부름을 시켰는데 신문뭉치 속에서 용케도 맞게 찾아 가져 온 것이다.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정확히 그날의 신문을 콕 찍어 정확히 들고 왔다. ‘소 뒷걸음치다 쥐잡기’가 아님은 분명했다.

세 살도 못되어 읽기는커녕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그 날짜 신문을 가져 온단 말인가? 가만히 보니 신문을 하나하나 냄새를 맡아보고 골라오는 것이다. 오늘 신문은 구문과 인쇄냄새가 다르다는 것을 포착한 것이다. 나로서도 미처 몰랐던 묘수를 어린 꼬마가 알았던 것이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들창코 정형’ 같은 비법은 없었다. 통시에 앉아 머리털을 쥐어뜯는다고 해결 될 일은 분명 아니었다. 고심 끝의 결론은 하나,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는 남몰래 죽자고 공부하는 수밖에!’ 엉덩이가 짓 물릴 정도로 미련하게 앉아서 교과서는 물론이고 참고서도 달달 외워버렸다. 고시 공부가 따로 없었다.

J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날 난데없는 잔치가 벌어졌다. 선생님들이 가채점을 해 보고 ‘틀림없는 수석 합격!’이라고 판정을 내린 것이다. 어리둥절했다. 서부경남 수재들이 모인다는 J중에 합격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수석합격이라니? 분명히 선생님들이 술에 취해 미친 모양 이었다! 그런데 5명이 공동 수석을 했고 나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열등감이 빠져나간 자리에 교만심이 꽈리를 틀어버렸으니. 결국 그 후 진득하게 책상머리에 앉아보지 않았고 학문을 이루지 못했다.

열등감에 짓눌려 자포자기 상태였던 것일까? 외톨이 생활을 해 온 한 청소년이 IS로 갔고 또 그를 추종하는 아이들도 나타난다. 대단히 걱정스런 현상이다.  IS에 대한 지상군 공격도 임박했다. 관련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열등감도 활력소가 된다는 말을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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