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책을 가장 읽고 싶던 때는, 작년 봄과 여름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때는 내가 책 한 권 진득하게 앉아 읽을 수 없던 시기였다. 세월호 사건과 유가족들의 투쟁에 당시 내 모든 신경이 쏠려, 그 어떤 다른 일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다. 우리가 ‘비통한 자’들이니, 그 때에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제목의 책이 얼마나 궁금했겠는가. 가장 절실하던 때엔 도저히 읽을 수 없던 책을, 한 계절과 한 분기점이 지나 그나마 내 속의 ‘폭풍’이 조금은 고요해진 계절에야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기록해두고 싶은 것은, ‘비통함’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다. ‘마음이 부서진 자들’의 부서짐에 대한 탁월한 반전, 그 부서짐의 활용에 대한 적극적 해석 말이다. 원서에서 ‘비통한 자들’은 ‘the brokenhearted’다.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저민 고통과 절망이 떠오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파커 파머는 ‘부서져 흩어지는broken apart’ 것이 아닌, ‘부서져 열리는broken open’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컨대 이 책은 마음이 깨어져 열리는 힘에 대한 것이다. 타자의 경험이 우리의 닫힌 마음을 부수어 열 수 있다는 믿음, “경계로 넘어 들어가는 것”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우리에게 설득한다. 그리고 그는, 더불어 이를 위한 마음의 습관 만들기, 규칙과 논리를 배우며 마음의 비공식적 습관을 습득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쓴다.
또 한 가지의 미덕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다만 어떠한 철학이나 이론적인 측면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법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사회운동, 활동가들, 바뀌지 않는 한국 현실에 우울과 절망을 느끼는 시민들을 위한 훌륭한 ‘실전서’이기도 하다. ‘비극적 간극’으로부터 오는 절망의 ‘힐링’은, 엄한 자기계발서나 치유서적에서 찾을 게 아니라 바로 이 책에서 찾을 일이다. 이런 게 그나마, 조금은 더 나은 삶을 향해 돌풍을 뚫고 슬로모션으로나마 계속 가게 하는 위로와 그 돌풍을 견디게 하는 힘, 아닌가.
※이영롱 씨가 쓰던 칼럼 <서울통신>은 지난 57호를 끝으로 마감했습니다. 대신 새해부터는 <이 한 권의 책>이란 이름으로 서평을 싣습니다. -편집자-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