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걸으면서 하는 독서가 여행’이란 조정래 작가의 멋진 말이 있듯이 겪어봐야 하는 것이 있다. 부산 출신으로 대만인과 결혼해 이제는 대만 사람이 되어버린 현지 가이드의 첫 일성은, “대만을 그저 따뜻한 곳으로 오해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의외로 춥습니다. 난방은 되어 있지 않지만 냉방은 빵빵하게 잘 되어 있답니다. 외투를 준비해 다니시는 게 좋습니다.”

우리는 현지의 더위 대비만 하느라고 겨울 외투는 일부러 공항에 주차해 둔 차에 두고 왔다. 두터운 파카를 입은 가이드의 뒤를 따라 초가을 행색의 일행은 조금씩 떨며 따라다녀야 했고 결국 나도 감기에 걸렸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본 기온만 믿고 온 무지의 소치이다. 대만은 습도가 높아서 습기를 없애기 위해 냉방을 한단다. 15도 밖에 되지 않는데 자동차, 열차, 호텔이나 식당에도 에어컨이 돌고 선풍기가 가동된다. 길거리에는 온난한데 그래서 실내는 춥다. 그런 환경 때문에 현지인들도 감기가 잘 걸리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습기를 없애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는 표정이다. 대만사람들은 겉치레보다 실질을 숭상하는 근면하고 검소한 생활 태도를 지니고 있는데 에어컨 사용에서만은 관대하다. 아마도 내륙에서 밀려온 사람들이 눅눅한 습기를 없애기 위해 그런 관습이 생긴 모양인데 원래부터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은 어떠했을까? 에어컨이란 현대적 기능이 나온 지 반세기 밖에 되지 않은데, 가이드의 말로는 원주민들도 마찬가지란다. 도시화가 가져온 생활양식의 변화 때문이다. 그래서 감기로 콜록콜록 하면서도 에어컨 밑에서 생활을 한다.

첫날 밤 10층 호텔 방에서 본 수도 타이베이의 밤 풍경이 익숙했다. 어디서 본 듯하다. 아, 생각난다, 중학교 수학여행 차 처음 본 1968년 가을 서울 밤풍경과 비슷하다. 가로등은 꺼져있고 네온사인도 거의 없으며 아파트도 컴컴하다. 잠자리 들어갈 때서야 거실 등을 끄는 우리와 달리 실내에 사람이 없으면 무조건 소등하기 때문이다. 어두워서인지 수도인 대도시인데도 고즈넉하고 정겹다. 1인당 GDP가 21,571달러로(우리나라는 28,738달러)로 우리보다 제법 낮지만 사회 안전망은 더 탄탄하다.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고 병원 3인 입원실까지는 무료이고 신장투석도 전액 보험혜택을 받을 정도로 의료보험이 잘되어있어 아프면 무조건 병원을 가기에 길거리에 약국은 보이지 않는다. 공원 입장도 당연히 무료이다. 이 정도면 살 만 하지 않는가? GDP수치는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고 삶의 질을 표시하지는 않는다. 서울 물가가 세계 최 상위권에 들었다는 우울한 보도를 접하면서 문득 작으면서도 강한 나라 대만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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