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도 M교도소 ‘폭력항소 방’에서 며칠 머물다가 ‘장미사동’으로 이방 되었다. 원래 9사동인데 언제부터인가 ‘장미사동’이라 불려왔다. 일반수들의 선망의 대상인 장미 사동은 모범수들을 수용하는 시설인 만큼 상대적으로 쾌적했는데 가장 훌륭한 것은 각 방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었다.

호스를 물이 나오는 구멍에 연결하면 얼마든지 물 사용이 가능해서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매일 샤워도 할 수 있었다. 3평 남짓한 각 감방에는 모범수들이 네 명씩 수용되어 있었는데 정치수는 일반수들과 격리 수용해야 한다는 내부 규정이라도 있었기 때문인지 난 혼자서 사용했다. 방을 옮긴 첫날 옆방의 재소자가 공장에서 작업을 마치고 오면서 아는 체를 했다. 연령은 50대 중반쯤일까?

“이 선생, 나는 정 아무개인데 들은 적이 있어요? 법창야화에서도 나왔는데?”
“법창야화? 라디오에서 나온 것이죠? 요즈음 밖에서는 라디오 연속극은 거의 안 들어서.”

그 순간 그는 실망보다 오히려 심한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아니 법창야화를 모르다니!’하는 표정이 역력해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법창야화란 70-80년대 라디오 연속극이었는데 감옥에 끌려온 사람들의 기막힌 사연들을 극화시켜 야밤에 방송한 것으로 컬러 TV에 밀려 당시에는 이미 종방 된지 오래였다.

어느 날 밤, 옆방에서 난투극이 벌어졌고 경교대가 출동해 두 사람이 끌려 나갔는데 공교롭게도 그 두 사람은 밖에 있을 때 운전기사였다. ‘법창야화’는 버스기사였는데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감옥에서 14년을 살고 있었고 보다 젊은 한 명은 트럭기사였는데 과실치사 뺑소니로 6년째 복역 중이었다. 야간 난동으로 두 사람은 징벌방으로 보내졌고 다시는 장미사동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모범수 자격이 박탈되었던 것이다. 또 이들은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기막힌 일은 이 난투극의 원인은 ‘방귀’때문이었다. 젊은 트럭기사가 늙은 버스 기사 코앞에다 대 놓고 방귀를 뀌었다는 것이다. 방귀가 발단이었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이 알고 있는 바깥세상의 ‘길’이 달라진 것이 문제였다. 이 두 사람은 다 전국을 누비고 다녔고 모르는 도로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만큼이나 도로를 새로 만들고 뜯어 고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한 명이 아는 도로는 15년도 더 묵은 도로이고 또 한 명은 6년 전의 길인데 서로가 ‘자기 길’이 맞다 며 고집을 피우면서 그동안 감정이 틀어져 있다가 방귀를 기화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

국도 3호선 송포교차로 개선 사업이 내년 2월에 개시되면 새 길이 생긴다. 늦게나마 개선이 된다니 다행이긴 하다만 처음 길을 낼 때 충분히 예상된 문제였기에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다. 바뀐 길 때문에 피터지게 치고받던 그 기사 두 사람이 문득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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