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땅콩 리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연일 땅콩이 인터넷과 언론 기사를 장식하니(실제로는 ‘마카다미아’이지만), 평소에는 크게 좋아하지도 않았던 땅콩이 절로 먹고 싶어질 정도다. 대한항공사 오너의 딸이자 부사장이 승무원의 서비스를 핑계로 출발하던 비행기를 회항시킨 사건이다.

그러나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제보에 따르면, ‘서비스 문제가 있었다’ 등의 애초에 알려진 것과는 사실 관계가 다른 내용들도 다수 있다고 한다. 또한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당시 탑승한 다른 승객과 승무원을 회유하거나 협박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리고 한 번의 실수는, 언젠가 그에 응당한 반성과 성찰 이후엔 만회되고 용서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실수가 너그럽게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이런 일이 있으면 그 사건 가해자의 얼굴을 꼭 찾아본다. ‘이 인간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이나 보자’라는 심보에서가 아니라, 기억해두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굳이 얼굴과 이름을 찾아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언론에서 많이 오르내렸다. 그렇게 알게 된 이름이랑 얼굴을, 잊어먹지 않고 꼭 기억해두려고 한다. 특히 그 어떤 노력과 이유도 없이 ‘어쩌다’ 그런 집에 태어나 ‘우연히’ 얻게 된 재산과 신분을 무기삼아, 베풀며 사는 삶을 살진 못 할지언정, 그저 그들처럼 특권층으로 태어나지 않은 죄(?)밖에 없는 약자를 괴롭히는 이들은 참을 수가 없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수성가한 사람은 괜찮단 건 아니다.)

그러다가, 이 참에 언젠가 기사를 보고서 무척 분노했던, ‘노동자 매값 폭행’ 주인공인 한 대기업 회장의 사촌동생도 다시 검색해 봤다. 그 사이 이름을 까먹어서 말이다. 잊을 만하다 생각나면 찾아봐야지, 작은 결심을 했다. 뭐, 사실 나 한 사람이 그들의 잘못들을 꾹꾹 기억해둔다고 뭔가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서히 잊히기 마련인 기억을 ‘굳이’ 잊지 않으려 하는 무서운 구석을 가진 한 사람이라도 있어서, 그들이 어쩌다 한 번은 정체모를 으스스함을 느껴 봐야 하지 않겠나.

이번 사건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은, 승무원들의 무릎을 꿇게 하고 심한 질책을 했다고 한다. 황제식 경영자들 뿐 아니라 많은 ‘고객님’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진정 내게 잘못했으면 무릎 꿇어!’라는 강요는 언젠가부터 결코 드문 사례는 아니게 된 것 같다. 자신에게 복종하는 (듯 해 보이는) 그 자세로부터 쾌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모욕과 치욕감을 안기는 폭력이 가장 확실한 ‘다스림’의 방식임을 믿게 된 것 같다.

며칠 전, 조사를 받기 위해 국토부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 앞에 선 조현아 전 부사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 때 엄청난 취재진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움츠리던 그 때, 그녀도 그런 모욕을 느껴보았을까. 만일 그랬다면 일생 최초의 경험이 아니었을까. 이 일이 아니었다면 영원한 공주인 채로, 충분히 전혀 모른 채 살 수도 있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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