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뉴스 속보가 떴다. ‘축제에서 환풍구 붕괴, 20여명 10m 추락’

처음에는 예사로 보았다. 워낙 사고가 잦은 사고 공화국이니 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축제 때 부실 시공된 시설이 무너져 사람들이 다친 모양이구나라고 여겼다. 그런데 장소가 분당, 판교란 자막이 나온다. 축제공연 도중 환풍구가 붕괴되면서 관객들이 20여m 아래로 추락해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사망자 중에는 20대 여성 신원 미상자도 있다. 판교는 내 동생 내외가 살고 있는 곳이고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내 딸아이가 삼촌 집에 같이 살고 있다. 딸아이 휴대폰에 전화를 걸자, ‘전원이 꺼져 있다’라는 멘트가 나온다. 전화를 끊자 갑자기 손에 땀이 잡히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문자를 남기고 연락이 오기까지 두 시간 남짓은 고통스러웠다. 유명 걸 그룹이 공연했다하니 딸아이가 친구들과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한 동네가 아닌가?

“아빠, 미안. 배터리가 나갔어요. 큰 사고가 났네요, 그렇잖아도 오늘 그 행사 친구들과 같이 가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연락해 오지 않아서 수영하러 갔어요.”

아이와 통화를 하면서 불현듯이 1959년 사라호 태풍 때의 일이 생각났다. ‘호박따까리’ 동네친척집에 며칠 머물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아재가 찾아와 있었다. 태풍이 오니 부모님들은 나를 데려오라고 일꾼들 중에 제일선임이며 가장 듬직한 ‘아재’를 보낸 것이었다. 귀가 길에 사천 강에 걸쳐있는 다리를 만났다. 이미 강과 논의 경계는 없어져버렸고 짙붉은 황토물이 범람하고 있었다. “꽝, 꽝” 하는 무서운 굉음을 내면서 큰 회오리들을 만들며 마구 밀려 내려오는 강물은 두려움에 온 몸이 오싹 얼어붙게 했다. 흙빛 강물이 다리위로 넘실거리고 있는 것이 금방이라도 다리를 삼킬 것 같아 보였다. 아재가 혼잣말 했다.

“ 허어, 그사이에 또 물이 많이 불었구먼. 건너 갈 수 있을까?”

아재 같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강 양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삼천포 쪽으로 갈 사람들은 읍내 쪽에, 읍내로 들어갈 사람들은 이 쪽 ‘호박따까리’에서 마치 다리를 하나 놓고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입을 꾹 다물고 지켜보던 아재가 갑자기 등을 내밀며,
“ 자, 내 목을 단단히 잡아라!”

나를 짓쳐 업고서는 외마디 기압 소리를 지르며 다리 위를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간 달렸을까 갑자기 양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내달리기 시작해서 순식간에 다 건넜다.

“참, 자네도 무모한 일을 했네, 그 정도로 물이 차면 다리 상판이 떠서 교각이 넘어간다네.”

아버지께서 다리 건넌 사연을 듣고선 아재를 꾸짖으며 한 이야기다.

판교 환풍구는 붕괴했고 사천다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안전문제를 우연이나 행운에 기댈 사안인가? 판교 참사를 보면서 문득 사라호 태풍 때의 그 다리가 생각났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