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키가 작아 이발의자 손잡이에 나무판을 가로 질러 놓고 그 위에 앉아서야 겨우 이발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부터 그 이발소 형하고는 친했다. 서너 살 많은 그 형은 그때부터 재잘 재잘 말을 곧 잘하는 ‘구라 쟁이’였는데 여러 가지 삶의 지혜를 나누어 주곤 했다. 배탈이 나서 끙끙 거리고 있는데 자기 할머니에게서 배웠다며 이런 처방을 해 주었다.

“배가 아프면 무조건 따신 아랫목에 배를 딱 부치고 가만히 엎어져 있으면 바로 낫는데이!”

그 형은 일찍이 가출을 했는데 몇 년 후 돌아 왔을 때는 이발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가출기간에도 이발소에 숨어 지냈던 모양이었다. 수건을 요란하게 뻥뻥 소리 내어 털며 젖은 머리를 말리는 것은 신기술이었다. 까까머리 중학생 머리에 물방울이 남아 있어야 얼마 있겠냐마는 내 머리를 대상으로 화려한 그 기술을 보여 주었다.

도시 이발관의 기술이라고 했다. 특히 면도 솜씨가 일품이었는데 각별히 서울에서 배운 것이라 귀띔 했다.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하게 구석구석 수염을 밀어내고 한 동작 마칠 때 마다 면도칼을 이리저리 휙휙 돌리는 현란한 솜씨도 살짝 보여 주었다. 물론 이발소 주인인 자기 아버지 몰래.

그 수 년 후 우연히 해수욕장에서 형을 보았다. 밀짚모자 한쪽을 살짝 말아 올려 맵시를 내고 까만 색안경을 쓰고 어깨에는 넓은 수건을 둘렀다. 그 뽐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동네 청년들이 시비를 걸어왔다.

토박이 청년들은 바닷가 사람답게 시꺼멓고 근육도 다부져 보였는데 비해 형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가날 펐다. 키는 껑충 컸지만 하얀 피부색은 그지없이 연약해 보였다. 큰 수건으로 빈약한 상체를 가릴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지만 가느린 하체는 숨길 수 없었다. 토박이 청년들이 노골적으로 빈정댔다.

“형씨, 어디서 논다고? 해골 같이 생긴 게 말이야, 우 하하!”
“나? 사천 역전에서 논다, 역전 면도칼이라고 못 들어 봤냐?”

하면서 갑자기 면도칼을 꺼내어 현란한 칼놀림을 보여 주었는데 햇빛에 번득이는 면도날과 형의 창백한 피부에 솟은 푸른 핏줄들이 기괴하게 어울리면서 오싹한 느낌을 자아냈다. 토박이들은 금방 주눅이 들었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 때 사천 역전은 사람 출입이 뜸해서 놀고 자시고 할 건더기가 없는 곳이라 주점은커녕 국수집 하나 없는 적막강산이었고 면도칼은 이발소에서 형이 평소에 고요하게 손님의 수염을 밀어주던 것이란 것을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얼마 전 배탈이 나 핫백으로 배를 감싸며 누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치료법은 어린 시절에 이발소 형이 처방해준 것이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여기는 삶의 지식들 중 많은 부분이 이렇게 전승되어 내려 온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났다.

사천읍 최초의 이발소였던 그 형네 이발소가 언제 사라졌는지는 안타깝게도 기억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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