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학생부장이 교장실로 찾아와서 전체조례를 연단다.

“조례 때 훈시 말씀 좀 해 주시죠.”

“그래요? 오늘 조례가 계획되어 있었던 모양이지요? 곧 나갈게요.”

우리학교는 웬만해서는 전체모임을 하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아이들과 조근 조근 대화를 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강당에 들어가니 아뿔싸, 난처하게 되었다.

강당 연단위로 ‘금연의 날’이란 큰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학생 대상 금연 캠페인을 벌이고 사진을 찍는 전시성 행사였다. 나도 학생부장도 애연가이고 학생들도 우리가 흡연자인 것을 환히 아는데 무슨 훈시를 해야 한단 말인가? 할 수 없다. 이실직고 할 밖에.

“여러분,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말은 들어 보았지요? 남의 산에 있는 돌이라도 나의 옥을 다듬는 데에 소용이 된다는 뜻이지요. 다른 사람의 잘못된 언행 또는 허물을 거울삼아 자신을 수양한다는 말이에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숱한 실패와 잘못을 범했는데 그 중 큰 하나가 담배를 몸에 붙여 버린 것이에요. 지금이야 말할 것 없지만 앞으로 어른이 되어도 반드시 담배는 멀리하기 바랍니다. 우리 시절엔 담배를 피워야 어른 시늉을 하던 때였으나 앞으로 여러분의 시대는 담배 피우면 사람대접 못 받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부장 교사가 조례를 마치고 나서 이런 푸념을 한다.

“휴우, 어릴 때는 어른 눈을 피해 담배 피웠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 눈을 피해야 되네요.”

담배 값을 2000원씩 내년부터 올릴 것이라 한다. 정부는 ‘담배로 인한 심각한 폐해를 줄이기 위한 종합 금연대책’으로 담뱃값 인상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모 방송국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 건강증진을 위해 담뱃값을 인상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보다 세수 확충을 위해서라고 하는 사람들이 세 배나 많았다. 담뱃세를 2000원 올릴 경우 최소 2조8000억 원의 세금을 추가로 거둬들일 수 있다. 세수 부족분의 3분의1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러니 ‘건강증진’이라 쓰고 ‘세금폭탄’이라고 읽는 것이다.

이웃 아파트 2층에 사시는 할머니를 자주 본다. 일순 보기에 팔순은 되어 보이시는데 유일한 낙이 담배다. 작년까지는 2층 베란다에서 태우시더니만 이제는 밖으로 나와 경로당 앞에서 비가 오나 바람이 불거나간에 흡연을 하신다. 아마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가족이 있는 모양이다. 보아하니 하루에 한 갑 정도는 태우시는 모양인데 내년부터 담뱃값이 왕창 오르면 어떻게 하나? 괜한 걱정이 된다. 이 할머니도 내년부터 연간 120만 원 이상의 담배세를 더 내는데 이는 9억 원짜리 고급주택을 지닌 사람의 재산세와 맞먹는다. 에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담배를 확 끊어 버릴까보다! 문득 수 년 전 학교 금연 캠페인 조회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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