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이 문제였다. 새 교장이 부임해 오면서 학교가 이상하게 변해갔다.

어느 날 교장실에 번듯한 책장들이 들어서고 전집류나 소장본 같은 두터운 책들로 채워졌다.
도서관에 있는 모양 나는 전시용 책들은 몽땅 교장실 책장으로 옮겨졌다. 물론 교장이 책을 읽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단에 나무가 몇 그루 들어와서 심어졌다.

교장실에 책장이 들어 온 날 교장의 새 집에도 응접세트가 놓여 졌고, 학교에 나무가 심겨진 다음날부터 교장 집 정원이 공사가 시작되었다. 얼마 후 학교 급수 체계를 손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교장 집에 새로운 급수 시설을 했다는 소식이 흘러 나왔다. 원래 학교 수도는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석간수를 작은 펌프가 끌어올려 급수대로 바로 나가게 하는 식으로 참으로 시원하고 맛이 있는 생수였다.

그런데 이 물을 굳이 옥상으로 끌어 올려 급수 탱크에 저장했다가 다시 급수대로 내려오는 식으로 바뀌면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물이 지붕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과정에 미지건 해져서, 시원한 생수에 물맛을 들인 시골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면 동네방네 뛰어 다니며 집집마다에서 물 동냥을 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도저히 더 이상 그냥 방관할 수 없었다. 출근하는 길에 교문에 붙어 있는 ‘○○중 정화위원회’라는 팻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내세운 슬로건이 ‘정의사회구현’이고 그 방도가 각 급 기관에 ‘정화위원회’를 설치해서 자체 정화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구호는 구호에만 그치기 마련이라 모든 기관의 정화위원회는 문서 위에서만 존재했다. 학교 정화위원장은 교장이고 전 교직원은 모두 정화위원이다.

“교장 선생님, 정화위원회 개최를 요구합니다.”

“정화위원회? 그런 것이 있었나? 그런데 무슨 안건이 있어요?”

“네, 학교 내의 비리와 전횡에 대한 정화 조처입니다!”

다음날 정화위원회를 개최하여 정화대상으로 학교장을 선정하고 교육청 정화위원회로 보고해 버렸다. 교육청은 발칵 뒤집어지고 감사가 나왔는데 어럽쇼, 감사 대상은 교장이 아니라 나였다.

사흘간 탈탈 먼지 털이 식 조사를 하다가 다른 교사 대신 숙직해 준 것을 찾아내어 경고 처분을 하고 이것을 빌미로 중간 발령을 내 버렸다. 이 강제전출이 내가 교육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이자 시발점이었다.

서울고법은 지난 19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효력을 항소심 판결 선고 때까지 정지시키라고 결정했다. 따라서 전교조는 합법노조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고, 전교조를 적법한 절차 없이 무력화하려던 정부는 창피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섬마을 총각 선생 시절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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