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 아빠’가 단식을 멈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참 다행한 일이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못 마땅하게 바라본 사람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긴 마찬가질 테다. 오월동주가 따로 없다.

허나 이것으로 그들의 희망대로 정말 고비를 넘긴 것인가? 오히려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민 아빠’가 단식을 중단하며 한 말을 떠올려 보자.

“협상 내용을 들었어요. 장기전이 될 것 같아요. 기력이 회복되는 대로 광화문에 나가서 완전한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 기소권이 부여된’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싸울 겁니다!”

그는 하나 남은 작은 딸과 매일 눈물로 지새우는 노모의 애원을 듣고 단식을 중단한 것이지 절대로 투쟁을 접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45일이란 너무나 긴 단식이었기에 보식을 시작한다고 해서 건강을 되찾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료진도 자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유민 아빠’의 강고한 정신력을 믿고, 회복될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런 가벼운 이야기도 할 수 있겠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가 당선이 되고나서 전교조는 1400여 명의 해직교사 복직을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전개키로 한다. 당시까지 정치권에서 단식 투쟁을 가장 길게 한 사람은 23일 기록의 김영삼 당선자였다. 그래서 전교조 지도부는 이런 고민을 나눴다.

“단식투쟁이란 최후의 방식이니 결사단식으로 임해야 한다. 더욱이 상대는 23일간의 단식 기록을 가진 정치인이다. 최소 23일은 넘어서야 협상 출구가 열릴 테니 소수 정예로 단식에 임하자!”

“소수 정예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세 사람! 제안자인 이 사람과, 그래도 젊고 팔팔한 경기지부장, 그리고 충북지부장. 특히 ‘접시꽃 당신’으로 숱한 여성들의 심금을 울린 충북지부장은 필수다. 솔직히 나야 굶어 죽어도 누가 알겠소만 당신은 울어 줄 사람들이 많잖아?”

좌중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는데 막상 충북지부장의 얼굴빛은 어두웠다. 난상토론 끝에 15개 시도 지부장들 모두가 단식투쟁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충북지부장은 단식 이틀 만에 배에 복수가 가득차면서 실신해 버렸다. 단식해서는 안 되는 지병이 있었던 까닭이다. 다행히 한 때 민주화 투쟁을 함께한 경험이 있어선지 김영삼 당선자로부터 긍정적인 신호가 와서 18일 만에 단식을 풀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이 죽도록 굶자!’라고 콕 집어 지적했던 두 사람, 도종환 충북지부장과 정진후 경기지부장이 이번엔 국회의원으로써 광화문 단식에 동참했다. 도종환 의원은 1일간, 정진후 의원은 10일간 단식 농성을 벌였다. ‘유민 아빠’의 단식 중단 소식을 듣고 문득 그 옛날 단식투쟁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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