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유한국씨 증언

일본으로 끌려가 노역을 하고 돌아온 유한국 할아버지.

따스한 햇살에 나락이 여무는 오후, 남양동 신벽리 벽동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에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8월부터 1944년 10월까지 일제의 강요로 일본에 건너가 노동을 착취당하고 돌아온 유한국(86) 할아버지가 있다.

마당 한 편에서 내년에 쓸 종자마늘을 다듬던 유 노인은 옛날 얘기를 들으러 왔다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유 노인은 일본 북해도 구정구 구정촌이라는 곳에서 철도건설을 위한 매립공사에 투입됐다. 나는 먼저 어떻게 해서 그 먼 곳까지 가게 되었는지 물었다.

“처음에는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모집공고가 붙었어. 사실 좀 솔깃했지. 근데 나중에 보니까 그기 아인기라. 전쟁터 가는 기나 마찬가징께. 그래서 아무도 안 나섰지.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한테 영장이 나오고, 그래도 안 나성께 ‘훌치기’식으로 마구 잡아 가삔기지.”

1942년 8월, 사천 옛 동성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수 백 명이 운집했다.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만 하는 20살 언저리의 청년들과 그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들이 뒤엉켰다. 당시 축동면 사다리 예동마을에 살았던 유 노인은 축동면에서 11명을 비롯해 각 읍면(당시 사천시는 10개 읍면)에서도 11명씩 차출됐다고 회상했다.

강제동원된 110명의 청년은 트럭으로 진주까지, 기차로 부산으로,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항으로, 다시 기차를 타고 북해도 함관시 구정촌까지 들어갔다. 그곳은 러시아 연해주와 마주보는 곳으로 일제가 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 생각했던 곳 가운데 하나였다.

자식에게도 안 들려준 옛 얘기를 기억을 더듬어 하고 있다.
북해도에서의 삶은 중노동과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낮에는 잠시도 한 눈 못 팔게 도로시마(관리인)가 따라붙제, 밤에는 다코비아(문어대가리처럼 생겼다고 불렀다는 막사의 별칭)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갔지, 사는 기 사는 게 아인기라. 그래서 도망간 사람도 더러 있었지. 우찌 됐는지는 모리겄고...”

이국땅에서의 고된 삶은 한 청년을 자살에 이르게 했다. “축동 하탑에 살았던 박덕규라는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기관차가 오는데 기찻길에서 안 비끼는기라. 그길로 세상을 떴지.”

유 노인은 얘기를 잠시 멈추고 햇살 따가운 바깥마당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식들에게도 꺼내지 않았다는 지난 얘기를 털어 놓는 노인의 얼굴엔 때론 분노가, 때론 회한이, 때론 담담함이 내비쳤다.

하루 종일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하루 노임은 3원. 1일 식사비 1원20전에 한 달을 못 버티는 광목으로 된 신발 등 생필품을 구입하려면 노임은 빠듯했다. 그래서 2년 남짓한 세월을 중노동으로 보냈지만 귀국한 유 노인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60년이란 침묵의 세월이 흘렀다.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고 같이 아파하지 않았다. 그저 ‘재수 없는 인생’이라는 자탄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며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진상조사위원회가 대통령직속기구로 만들어지고,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이 나온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조용히 정리하던 유 노인에게 다시 기회가 온 것이다.

함께 끌려갔던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의 기억으론 서포면 구랑마을의 김일문(24년생)씨가 유일한 생존자다. 유 노인은 과거에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이제는 스스로 증언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후손을 찾아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녔다. 어떤 이른 증언을 해준다 해도 나오지 않고, 어떤 이는 증언을 부탁한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에 없는 사람을 위해서는 절대 증언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유 노인이 보증한 사람은 10여 명이다. 아직 찾지 못해 안타까운 사람도 여럿이다.

“(위로금이)큰 돈도 아닐낀데 뭔 도움이 되겄나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야 안 되겄나.” 유 노인은 ‘살아남은 자의 마지막 임무’를 조용히 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의 마지막 임무'는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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