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한 후배가 면허 취득 후 최초로 혼자서 자기 차를 몰고 나가던 날이었다.

중고 티코 차량 뒤편에 예쁘게 ‘초보운전’이라 써 부치고 초보 운전자답게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건널목 신호등에 파란 불이 노란 불로 바뀌는 순간 교통법규에 나와 있는 데로 브레이크 패들을 밟았다. 그 순간 뒤에서 ‘꽝’하고 차가 부딪혔다. 추돌사고가 난 것이었다. 충격 받은 목털미를 만지며 내리니 시커먼 외제차에서 까만 정장 차림을 한 조폭 같은 덩지가 인상을 쓰며 나와서 들입다 뺨 때기를 올려 부치면서 이렇게 소리치더란 것이다.

“ 왜 갑자기 서냐? 빌어먹을 00야!
“ 노란불이면 서야 하잖아요?”
“ 빨리 지나가야지,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 초보가 앞에 서 가지고, 야, 이것 가지고 차나 고쳐!”하면서 수표 한 장 던져 주고는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후배는 혼자서 멍하니 뺨을 만지며 주위를 살펴보니 교통 정리대 위에 경찰이 서 있었는데 못 본체하고 있더란 것이다.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욕 듣고 뺨만 얻어맞은 것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요즈음 정치인들의 망언이 도가 지나치다. 세월호 참사를 조류독감에 비유하고, 농성 유가족을 노숙자 운운하며, 심지어는 엉뚱하게도 경제 침체의 원인으로 돌리기도 한다. 또 버젓이 교통사고라 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다가 난 사고이기에 그렇다고 한다. 영문도 모른 체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절규한다,

“왜 교통사고를 참사로 키웠냐고? 그냥 나오라고 했으면 다 살았을 것인데, 왜 나오지 말라했냐고?”

마지막 순간에 남긴 동영상에 담긴 아이들의 대화 한 토막을 들어보자.

“ 아, 너무 기울어졌어. 이러다 죽는 것 아니야?” 동시에 이런 승무원의 지시가 나온다.
“ 가만히 계세요,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 아, 대구 지하철 때도 가만히 있어라 했는데, 그 말 듣고 있었던 사람은 다 죽고 말을 듣지 않고 나간 사람들은 살았다는데?”

또 단원고 고 강00군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당일 아이가 전화해 왔는데, 해경 말씀 잘 듣고 행동해라고 한 것이 9시43분이었어요. 나오라 했으면 살렸을 것인데, 내가 아이를 죽인 것이에요. 특별법 제정 과정을 보면서 나라가 썩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렇게 썩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해경 말 들어라 하지 않았지요. 왜 그렇게 아이가 죽어갔는지 진상규명하고, 책임자 처벌해야 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일에는 순서가 있다. 아무것도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유가족들은 보상을 요구한 적도 없는데도, 교통사고로 여기고 보상받고 끝내라 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나라인가?

지난 7일 여야 대표가 전격적으로 특별법에 합의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들의 구호에 요구와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수사권·기소권 없는 특별법은 필요 없다, 대입특례 개나 줘라, 밀실야합 거짓 특별법 필요 없다, 진실한 특별법을 제정하라!”

이 국면을 결사적으로 벗어나고픈 여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야당이 왜 ‘말리는 시누이’역할을 자임하는지 알 수 없다. 이러니 외면당하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참사 대응을 바라보면서 문득 황당한 일을 당해 분노에 치를 떨던 그 후배가 생각났다. 그는 당시 말했었다,

“내 뺨을 친 양아치 놈보다 먼 산보는 시늉하던 경찰이 더 밉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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