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첫 발령을 받고 얼마 되지 않은 초가을 어느 날이었다.

학급의 급장이 헐레벌떡 교무실에 왔는데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선생님, 큰 일 났어요. 정말, 이런 일이!”
“아이고 숨 넘어 가겠다, 이 녀석아. 천천히 말해 봐.”
“교실에서 돈이 없어 졌어요, 돈이! 그 돈 없으면 안 되는데...”


당시에는 정부에서 저축을 장려했고 학교에서도 정부시책에 부응하여 반강제적으로 학생들에게 저축하도록 했다. 매월 은행 직원이 학교로 출장을 와서 아이들의 저축금을 걷어 갔는데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급장이 학급 학생들의 통장과 저축할 돈을 모아서 일괄적으로 저금처리를 하곤 했다. 그날도 급장이 급우들이 저축할 돈을 모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돈이 몽땅 없어졌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학급 내 도난 사건도 문제이지만 막상 절도범이 덜컥 잡히기라도 하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절취한 아이가 공개되면 그 아이는 학교를 다닐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신출내기 담임은 범인을 잡는답시고 우왕좌왕 좌충우돌하였지만 결국 잡지 못했다.

그 때 일기쓰기가 학교 특화 사업으로 정해져 있어서 매일 일기장을 담임에게 제출하여 검사를 받게 되어 있었다. 아침 마다 아이들 일기장이 담임교사 자리에 모였다. 평소엔 아이들의 일기를 읽지 않았지만, 그 사건이 있었기에 아이들의 반응을 살펴 볼 요량으로 일기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대부분은 내용이 평이했는데 한 학생의 것이 특이했다.

조 아무개 학생은 키가 멀쑥이 커서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항상 조신하여 마치 없는 것 같이 조용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일기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 오늘 분실 사고가 났다. 모든 학생들이 종례 시간에 한 시간도 더 넘게 눈을 감고 선생님의 화난 잔소리를 들었다. 선생님은 돈을 가져간 사람을 용서할 테니 조용히 손짓을 하라고 했다. 한참을 그렇게 했는데 자수한 년은 없는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반드시 찾을 수 있다고 온갖 호들갑을 떨었지만 결국 범인은 찾지 못했다. 우리는 괜히 한 시간이나 생고생하고 저축할 돈 만 날렸다. 참 웃기는 일이다!’

유병언이 거의 백골상태로 발견되었다. 여러 정황상 유 씨는 이미 5월 말경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단다. 그런데 6월2일 대통령은 ‘하루빨리 유병언을 검거해서 재산을 모두 확보해야 구상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6월10일 국무회의에서는 ‘모든 수단 방법을 강구하라.’고 지시하고 6월13일에는 엉뚱하게도 유 씨를 잡기위한 전국적으로 반상회까지 열렸다. 압권은 7월21일 ‘꼬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검거는 시간문제.’ 라는 대검부장의 발언이다.

유 씨는 도주 중에 ‘눈 감고 팔 벌려 요리조리 찾는다. 나 여기 선 줄 모르고 요리조리 찾는다. 기나긴 여름 향한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며 자신을 쫓는 검찰과 경찰을 조롱하는 글을 남겼다. 이 말은 희한하게 적중되었다. 경찰의 보호 하에 유 씨의 ‘꼬리가 아니라 온 몸통’이 시신 냉동보관실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검. 경은 연인원 170여만 명이란 엄청난 병력을 동원하여, 등잔 밑은 못보고 ‘두 눈 꼭 감고 요리조리’ 유령만 찾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쉰 살을 바라보고 있을 내 제자 조 아무개는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참 웃기는 일이다!’ 하고 있지나 않을까.

유병언씨 사체 발견 사태를 지켜보며 문득 초임 시절 학급절도 사건이 생각났다. 아, 참! 신출내기 교사의 호들갑 덕분인지 우리 학급에서는 더 이상 절도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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