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교사들의 행동에 통제가 심했다. 교사로서의 첫 발령지였던 통영의 여학교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급한 볼일이 있어 잠시 학교 밖을 나가야 할 때면 외출부를 써서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교무실에서 관리자 역할을 맡았던 당시 교감은 큰 키에 굵은 뿔테안경을 쓴 사람이었는데, 시인이자 국어교사 출신이었다. 그는 소처럼 큰 눈망울을 가졌는데, 이를 치켜뜨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 약삭빠른 인사가 아니었는지, 교장이 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은 크지 않아 보였다. 고향인 통영에서 교감으로 퇴직하는 것에 그럭저럭 만족하는 듯 싶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가진 ‘완장 권한’을 알뜰하게 활용했다.

교사들이 외출부를 들고 교감 책상 앞에 서면 단번에 허락이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결재를 받는 과정에서 꼭 큰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더러워서’ 외출을 포기하기 일쑤였다.

당시에 나는 문화사업을 맡고 있어서 거의 매일 관공서를 방문해야 했다. 학교와 관공서는 일과시간이 같았던 탓에 외출이나 조퇴가 아니면 일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듣지 않고 결재를 받아냈다. 주위의 동료 교사들은 이 광경이 무척 이상하고 신기했던 모양이다.

“이 선생. 교감 선생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아무런 말도 없이 결재를 해준단 말이오?”
“아, 말을 아예 안 합니다. 소리도 내지 않고요. 그냥 입만 움직이지요.”
“네? 말을 하지 않고 결재를 받아낸다고요?”

동료 교사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실 나만 아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교감은 가는 귀가 살짝 먹어서 잘 듣지 못했다. 본인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이를 모른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외출이나 조퇴를 하기 위해 교감 앞에 선 교사들이 야단을 맞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외출부를 든 교사들은 대개 잔뜩 주눅이 들게 마련이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교감은 평소 사람의 입 모양을 보고 말뜻을 알아차렸던 모양인데, 교사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도무지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신경질이 터지고 급기야 “종례 마치고 가시오!”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되는 것이었다.

이를 일찌감치 눈치를 채고 있었던 나는 교감에게 외출 결재를 받으러 갈 때, 아예 고개를 빳빳이 들고 보고했다. 그리고 교감이 잘 볼 수 있도록 최대한 느리고 또렷하게 입 모양으로만 소리 없이 말했다.

‘저는 군청 재무과에 가서 업무를 처리해야 합니다.’

교감은 아예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무엇을 묻고, 따질 건더기를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외출부에 적힌 외출사유만 슬쩍 보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아이들 단속 잘 해놓으시고, 나가서 업무 잘 처리하도록 하세요.”

나만의 이 비법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래서 이후로는 외출이나 조퇴와 관련해서 큰 소리가 나는 일이 없었다.

뉴스를 보다가 오래간만에 ‘교사들의 집단조퇴’에 관한 내용을 보게 됐다.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판결이 난 이후 교사들이 집단조퇴를 통해 그 일의 부당함을 알리고 바로 잡으려 한 것이다. 지난달 27일 전교조가 전국적으로 진행한 ‘조퇴 투쟁’은 2006년 10월, ‘교원평가제’를 둘러싼 반대투쟁 이후 8년 만의 일이다.

이 일의 발단은 정부가 6만 명에 이르는 조합원 중에 7명의 해직교사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전교조의 합법적 지위를 박탈한 데에 있다.

전교조와 정부가 정면충돌하게 되면 결국 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진정 몰랐던 것일까? 한 아이의 친권을 두고 솔로몬이 지혜로운 판결을 내렸다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진짜 어머니는 정부일까, 전교조일까?

이렇듯 혼란한 시기에 흥미로운 일이 하나 더해졌다.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식절도’에 해당하는 숱한 논문표절과 함께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학교가 정한 시간의 절반만 채웠다는 이른바 ‘반토막 강의’ 논란이 불거진 것.

김 후보자는 이번 학기에 교원대에서 ‘교육의 행정적 기초’라는 3학점짜리 과목을 맡았다. 매주 수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되는 강의였는데, 그는 첫 번째 강의부터 마지막 강의까지 딱 절반인 한 시간 반 동안만 강의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김 후보자는 학생들에게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니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은 있었던 모양이다. 이에 정치권은 그의 인사청문회 통과를 장담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자진 사퇴하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국회 인사청문회의 결과에 상관 없이 대통령의 의지만 있다면 임명을 강행할 수도 있는 것이니, 김 후보자가 교육부 장관으로 취임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매주 어김없이 강의시간의 절반만 채우고 무단조퇴를 일삼은 장관이 조퇴투쟁에 참여한 전교조 교사들을 징계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염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전교조 교사들은 조퇴투쟁을 진행하면서도 수업을 빠뜨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니 김 후보자의 용퇴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전교조 교사들의 조퇴투쟁을 보면서 신규교사 시절의 ‘외출, 조퇴’파동이 문득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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