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초여름 지금은 헐어버린 진주교도소에 잠시 신세를 진 적이 있다. 당시에는 정치적 양심수들이 양산되기 전이라 진주교도소 재소자 중 정치범으로는 유일했다.

3사동 독방에 갇혔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았던 앞 방이고 문익환 목사가 오랫동안 거처했던 방이라 했다. 나에게만 따로 감시 감독하는 간수부장이 한 명이 배치되었는데 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나이 지긋한 대머리 정 부장이었다.

정 부장은 매일 오전 11시경에 와서 운동하라며 감방 문을 열어 주었다. 정치수는 일반수들과 격리시켜야한다는 규정이 있는지 방도 따로 식사도 따로 운동도 혼자서 했다.

운동장이라야 운동기구라고는 하나 없는 다른 사동과 동떨어진 3사동 담장 안 뜰이었지만, 소싯적에 이런저런 운동을 배워 놓은 게 있어서 혼자서 맨몸만으로도 충분히 땀을 낼 수 있었다.

정 부장은 이런 내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정 부장은 내가 목욕 후 몸을 말리며 잠시 쉴 동안 말을 붙이곤 했는데 아마 근무일지에 남겨야 하는 모양이었다.

“이 선생, 운동 많이 한 모양이지요? 몸놀림을 보아하니.”

“그럼요. 우리가 하는 일이 운동 아닙니까? 민주화운동하려면 몸 운동도 열심히 해야죠.”

“그렇군요. 그런데 내 좀 궁금합디다. 왜 그 데모하는 사람들은 머리띠를 감지요?”

“그것은 일종의 전통이지요, 옛날 무사들도 전투에 나서면서 머리를 징근 동여매지 않았습니까? 공부할 때도 머리끈을 하면 집중되는 느낌이 있잖아요? 일종의 결의를 뜻하는 것이죠.”

“네, 그렇군요. 그런데 다들 왜 붉은 띠를 매지요? 하필이면. 징그럽게 말이에요.”

정 부장은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 빨갱이가 아닌가?’하는 뜻을 바닥에 깔고 하는 말이다. 또 나 한테서도 그런 비슷한 기미가 보이면 보고서에 쓸 거리도 생기는 셈이다. 하루 종일 놀고먹을 수는 없는 노릇일 터이니, 정 부장은 나를 감시하는 일 이외는 업무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 교사들은 붉은 띠를 매지 않아요. 행여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봐서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걱정이에요.”

“무엇이 걱정인데요?”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들이 다 붉은 유니폼을 입었잖아요? 그래서 외국에서는 우리 대표팀을 ‘붉은 악마’라고도 한데요. 왜 그렇게 붉은 복장으로 어린 아이들을 외국으로 내 보내는지 모르겠어요. 또 그것만이 아니에요. 제가 공군장교 생활을 해서 아는데 공군들은 군복 속에 머플러를 매거든요. 그런데 유독 조종사들만 빨간 머플러를 해요. 영화도 있잖아요, ‘빨간마후라’라고요. 우리나라는 전투기로 3분이면 휴전선을 넘어갈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그렇게 빨간 색깔로 목을 맬까?”


“엉? 그 참, 허 참!”

한국전쟁 당시 전투기 조종사들의 활약상을 영화로 만든 ‘빨간 마후라’는 젊은 시절의 신영균, 김진규 등의 당대 일류 배우들이 총 출연한 고전영화로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었다.

또 그 몇 년 전인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4강 진출이란 쾌거가 있었다. 현지 언론들은 축구 변방인 대한민국 대표팀의 맹활약에 놀라 ‘붉은 복수의 여신(Red Furies)’이라고 불렀고 대표 팀의 애칭이며, 응원단의 이름인 ‘붉은 악마’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또 다시 4년 만에 돌아온 월드컵 예선 첫 경기에서 대표팀은 러시아와 비겼고 23일 알제리와의 2차전에서는 전통적인 빨간 유니폼을 입고 나섰지만 패했다.

이로써 예선 통과는 어려워 보이지만, 길거리 응원전에서도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청원서명을 받고 있다니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월드컵 경기다.

이제 팔순이 다 되어 갈 정 부장이 ‘레드 컴플렉스’에서 벗어나 빨간 머플러를 목에 감고 월드컵 응원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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