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2007년 여름, 지독히 무더웠던 8월이었다.

진주에서 행사를 마치고 귀임하면서 지역 시민사회 인사 몇 사람과 차 한 잔 나누자는 전갈이 왔다. 장소는 공군 3훈비 비행장 귀빈실이었다. 스님 한 분, 신부 한 분, 교대 총장, KAI 사장, 그리고 교사였던 나, 이렇게 다섯 명이 초청된 단출한 자리였다.

“죄송합니다. 대통령 일을 잘해서 칭찬을 받아야 여러분도 기운이 나실 텐데, 제가 잘 하지 못해 욕만 얻어먹어 면목이 없습니다. 원래는 저녁에 막걸리라도 함께 나누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경호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1박은 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경호실은 자기 일을 하는 것이니까 따라 주어야 하고요. 아무튼 미안합니다.”

대통령은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고 다소곳이 앉아 이렇게 말했다. 반면 다른 이들은 편하게 앉아 있었다. 하긴 종교인들이나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처럼 무릎을 단정히 붙이는 훈련은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니까.

화제는 주로 말하기 좋아하는 대통령과 대통령을 난생 처음 지근거리에서 만나 흥분이 된 스님이 이끌었다. 원래 과묵한 배 신부는 묵언수행을 하듯이 묵묵히 앉아 있기만 했다. 나 역시 별 할 말이 없었다.

퇴임을 앞 둔 소회를 밝히는 대통령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여서 별로 말할 흥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환하게 말했는데도 문득문득 짙은 그림자가 엿보이는 듯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재야인사들의 쓴소리 정도는 각오하고 자리했던 모양이었다.

원래 재야인사들은 바라는 것이 없으니 대통령이라고 해서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런데 화려한 언설의 스님 덕분에 대화가 편안해졌는지 종내에는 대통령도 무릎을 풀고 흉금을 털어 놓는 모습이었다. 대통령이 작별할 때 갑작스럽게 내 손을 잡고 전용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선생, 저기까지 같이 좀 걸을까요?”

둘은 손을 잡고 나란히 경호선을 넘어 활주로로 들어갔다. 햇빛에 달궈진 한낮의 활주로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교육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교육만이 나라를 살립니다. 퇴임 후에도 관심을 가지겠습니다.”

노 대통령의 손은 농부의 손 마냥 크고 두툼했다. 체격에 비해 손이 큰 사람은 섬세하고 배려심이 많다. 퇴임 후 봄 소풍 차 봉화마을로 찾아간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한 시간 넘게 특강을 해 주었다. 퇴임 후에도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지겠다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요즈음 언론에 갑작스럽게 ‘대통령의 눈물’이 관심사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통령의 담화를 앞두고 ‘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지 않을지’가 화제거리가 됐다. 참 기이하다. 눈물도 계획하며 흘리는가?

웬만한 연극배우는 매회 극중에서 울어야 할 장면에서 틀림없이 눈물을 철철 흘린다. 이미 유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눈물지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대통령의 눈물’에 관심을 보일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진정성’에 더 신경을 곤두세울 때다.

대통령도 사람인지라 눈물을 보이는 것이 언론에 노출된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가장 사람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는 눈물은 아무래도 ‘노무현의 눈물’일 것이다. 16대 대통령 선거 때 선거광고로 나온 것이다.

광고인데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은 진정성 때문이었다. 문성근의 연설을 듣는 중에 노 후보가 울컥했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장면을 누군가가 촬영했고 그 부분이 광고에 실렸다.

광고이지만 연출되지 않은 실황이었던 것이다. 픽션보다 다큐멘터리가 더 감동적인 법이다.

세월이 참 빠르다. 벌써 5주기다. 세월은 살처럼 흐른다 하더니만 무섭게 빨리 지나갔다.

5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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