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자연의 광활한 차밭 전경.
바야흐로 커피 전성시대입니다.

현대 직장인의 하루 평균 커피 섭취량이 4잔이라고 하는데요, 저도 커피를 꽤나 마시는 편이라 세어보니 직장인 평균 커피 섭취량을 훌쩍 넘네요.

카페인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하지만 어쩐 일인지 저에게는 해당되지 않아서 습관처럼 마시곤 했습니다.
그러다 몇 달 전부터 차(茶)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이래저래 선물 받은 차가 찬장에 가득해서 이러다 썩겠다 싶더군요.

티포트랑 워머랑 구입해서 저녁에 책상에 앉아서 일할 때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게 의외로 분위기 살리고 건강 챙기는데 그만입니다. 야밤에 괜히 입이 심심할 때 무언가라도 집어넣어야겠는데, 이 못된 습관이 뱃살의 원흉이 아니겠습니까. 좀 습관을 바꿔보자 싶기도 해서 차를 가까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하게 찻물을 끓이고 차구를 챙기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등의 준비는 따로 하지 않습니다. 그냥 주전자에 물 데워서 부어먹는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문득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만화 『맛의 달인』에 종종 등장하는 센리큐(千利休)의 차노유(茶の湯)가 생각이 나네요. 그러니까 무언가 격식을 차려야 하는 게 아닌가, 다도에 어긋난 게 아닌가 싶은 겁니다.

센리큐는 일본 전국시대에 태어난 다조(茶祖)입니다. 전국시대 때 차를 즐기던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인이었고, 차를 마시면서 정치를 논했기에 실용성의 가치를 높이 샀습니다. 센리큐는 이 실용성에 형식을 통한 정신수양을 강조해 일본 다도를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죠. 그러고 보면 만화책이 전하는 정보도 장난 아니네요.

▲ 차밭에서 바라본 다솔사 적멸보궁
그런데 차를 마심에 있어 형식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요? 일본은 700여 년의 다도문화를 자랑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어땠을까요? 괜히 궁금해서 좀 찾아봤습니다.
 
일본다도는 중국의 다례(茶禮)에서 비롯됐으며 부처님께 공양하는 불교의식이었다고 합니다. 이 다(茶)라는 글자가 차(茶)로도 읽히죠?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절 ‘차례상’ 할 때의 바로 그 차례입니다.

기본이 종교의식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다도의 고요함을 이해할 수 있겠는데요, 우리나라 고유의 차례도 그러했을 법 하지만 안타깝게도 차례(茶禮)는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조선 중기까지는 차례가 꽤나 유행했다고 합니다. 다시(茶時)라고 해서 사헌부(司憲府)의 벼슬아치가 매일 한 번씩 모여 회의를 했는데, 이 때 찻물을 끓이던 여노비가 바로 다모(茶母)입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란 대사로 유명한 바로 그 드라마의 주인공 말입니다.

조선의 차례는 단절됐지만 일본은 에도시대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일본다도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니, 역사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는 칭찬하고 박수칠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다만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형식이 한편으로는 너무 비장해 갑갑합니다. 바쁜 현대인들이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네요.

이런 일본 다도를 냉철하게 비판한 사람이 있었으니, 짜자잔~! 효과음을 배경에 깔고 등장하는 이가 바로 다솔사(多率寺) 주지스님인 효당(曉堂) 최범술(崔凡述)입니다.

효당은 『韓國의 茶道』(보련각, 1973)를 통해서 “차는 다만 물을 끓여 간맞게 하여 마시면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차의 생활이 어떤 형식이나 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호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잔의 차로 목을 축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차 생활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있으니, 바로 ‘간맞게 한다’는 그 것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지나치게 의식화(儀式化)와 격식화(格式化)를 하고 있는 일본의 다도문화를 지적하면서 남긴 말인데요, 아예 대놓고 “오늘날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차도의 까다로운 형식적 예의를 들추어내고 싶지는 않지만 차의 생활에 있어서는 적어도 함부로 처리하는, 알뜰하지 못한 자세는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하겠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 다자연 마당을 지키는 차구 조형물.
뜬금없이 효당 스님의 등장에 의아해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효당 최범술은 한국 차도를 중흥시킨 인물로, 명맥이 끊어진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그의 저작 『韓國의 茶道』를 통해서 시작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참고로 효당은 다도(茶道)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았습니다. 차도(茶道)를 비롯해서 모든 다(茶)는 차(茶)로 읽고 부르고 썼습니다.

어라? 우리나라에도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요, 맞습니다. 중국의 육우가 쓴 『다경(茶經)』과 쌍벽을 이루는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한 장본인이며, 『차신전(茶神傳)』을 통해 차 따기와 만들기를 비롯해서 차구와 관리법까지 차도에 관한 모든 것을 전했던 분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차례는 단절되고 말았고, 이를 복원한 것이 효당입니다. 아마 스님들이 이렇게 차도 복원에 공을 들였던 것은 차례가 불교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이유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는 20일은 곡우(穀雨)입니다. 시기로 명확하게 구분한다면 우전차(雨前茶)는 꼭 이맘때에만 거둘 수 있겠네요. 차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계속하겠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