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교도소 운동장에서 있었던 일. 갇혀 지내야 하는 죄수들 처지에서는 공기도 한껏 들이키고 햇볕도 마음껏 쬘 수 있는 운동 시간이 제일 즐거운 시간이다.

또한 이 때 다른 구역에 있는 재소자들과 소통도 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운동에 열중하고 있는데 한 일반수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양심수들과 어울리는 것을 경계하는 교도관들 때문에 일반수들은 눈치를 살피는데 이 사람은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몸매는 둥들 둥글하고 태평한 인상에, 남들은 운동한답시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데 혼자서 운동장 트랙을 따라 타박타박 걸어 다니는 모습이 천생 마실 나온 동네 아저씨다. 그 한가하기 그지없는 사내가 다가와서 아는 체를 했다.

“선배님, J고 나오셨죠?”

생면부지의 사람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아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칸칸이 갇혀 지내는 감옥인데도 소식은 그야말로 바람같이 날라 다닌다.

사건으로 신문에 난 사람이 들어오면 당사자가 자기 방을 찾아 들기도 전에 신상 파악이 다 끝나 있는 것이 이 쪽 세계다.

“그런데, 몇 해 졸업생이오? 무슨 건으로 들어왔소?”

기수를 맞추어보니 두 해 후배다. 자기 말로는 증권회사 다니다 금융사고로 들어왔다 한다. 행색을 보아하니 영 ‘개털’로 지내지는 않는 모양이다.

감옥에서 재소자들은 스스로를 두 부류로 나누는데 은어로 ‘범털’과 ‘개털’이다. 어감 그대로다. ‘범털’은 힘 있는 죄수이고 ‘개털’은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다. 죄수복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대부분의 수인들이 걸치는 푸른 옷인데 복지가 면직이라 쭈글쭈글 하고 당연히 볼품이 없는 작업복이다.

또 한 종류는 양복지로 만든 수의인데 세탁공장에서 다림질을 해서 잘 입으면 제법 각도 서서 짝퉁 신사복쯤으로 보인다.

사내는 윗옷은 양복지로 만든 옷이고 바지는 보통 작업복 차림이다. 아래위로 짝 차려 입을 정도는 아니지만 괄시 받지는 않는다는 증거이다.

웃기는 일이지만 감옥에서는 의외로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 좋은 옷을 입는 다는 것은 ‘범털’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개털’은 아니라는 표징이다.

옷은 그대로 신분과 권력을 나타내는 것이니 차림새에 신경을 쓰는 것은 생존전술의 일부인 셈이다.

이 사람의 사연을 자세히 들어보니 고약한 작자다. 개미 고객들이 맡긴 돈을 횡령하다 사달이 난 것이다. 교사들의 퇴직금, 은행이자보다 수익이 많을 것이라는 꼬드김에 맡긴 저자거리 아주머니의 눈물이 배여 있는 적금 같은 숱한 서민들의 고혈이 담겨있는 돈들을 가로챈 이 자의 말 본새가 이렇다

“선배,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1년 살았고 1년 남았는데 나가면 인생 역전입니다. 원래 한 3억 챙겼는데 그동안 흥청망청 원 없이 잘 쓰고 놀기도 했고요. 비싼 변호사 사니까 징역도 벌금도 얼마 떨어지지 않습디다. 이런저런 돈 다 합해도 한 1억이면 충분하데요. 2억은 곱게 묻어 놓았지요. 그깟 봉급쟁이 몇 년 해야 그런 큰 돈 만지겠습니까? 나가면 여관이나 하나 폼 나게 지어 놓고 슬슬 살 생각이지요. 나중에 큰 술 한 번 살게요.”

“에끼, 도둑놈, 다시는 내 근처에 얼른 거리지도 마! 도둑놈들이 다 같다지만 배운 놈이랍시고 서민들 등쳐먹는 너 같은 놈이 제일 나쁜 놈이야!”

이 장면은 20년도 더 된 옛 이야기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횡령금액이나 벌금액수가 어마어마하게 인플레 되어있을 뿐이고 ‘범털’이 ‘황제’로 등극할 정도로 폭 썩었다.

얼마나 고급한 쓰레기인지 모르지만 노역 기간 6일 중 단 하루 쓰레기 청소하고 30억 감액 받은 ‘황제 노역’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그 고약한 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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