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의 석학(碩學) 구암 이정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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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의 석학(碩學) 구암 이정을 아시나요
  • 배선한 객원기자
  • 승인 2014.03.2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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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한 작가의 사천삼천포愛 빠질 만한 이야기-22

▲ 구암 이정 선생이 만년을 보낸 구계서원.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니 마음도 한들한들 떠다니는 기분입니다. 가만있을 수 있나요, 꽃길 따라 드라이브에 나섰습니다. 홍매화 백매화가 가지를 따라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게 마음만이 아니라 정말 봄이 됐구나…… 싶네요.

봄에는 집에 꽃이 있어야 한다 싶어서 화원에 갔더니 팬지를 비롯해서 형형색색의 꽃이 수북하게 피어 있습니다. 하지만 선진리성의 벚꽃은 몽우리를 물고만 있지 아직까진 앙상하기만 합니다. 뭐 이것도 잠시일 뿐 곧 붉은 벚꽃천지로 돌변하겠죠.
최근 기상대에서 지역별 벚꽃 개화시기를 발표했는데 내용을 보니 평년보다 3일, 작년에 비해서는 10일 정도 늦을 거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이 4월 4일에 개화하고 진주는 6일, 해안지역은 그보다 빨라 4월 1일이라고 되어 있네요. 벚꽃은 대체로 한 번 피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꽃망울을 터뜨리고 일주일 후 만개한다고 보면 사천지역은 4월 둘째 주말이 피크가 될 것 같습니다.

올해 선진리성 일원에서 열릴 제19회 와룡문화제가 4월 10일부터 14일까지 나흘 간 열리는데 타이밍이 정말 기차네요. 이렇게 절묘하게 맞추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구계서원의 솟을대문 풍영루는 노끈으로 감겨 있지만 풀고 들어가면 됩니다
매년 선진리성에서 와룡문화제가 열릴 즈음 벚꽃구경을 하는 건 필수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와룡문화제 기간에 구암제 행사를 함께 열기 시작하네요. 구암(龜巖) 이정(李楨) 선생의 업적과 사상을 재조명하기 위한 행사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구암 선생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와룡문화제나 열심히 잘 치르지 뭘 또 이렇게 거창하게 판을 벌리시나……’ 이런 생각도 조금 했습니다. 게으름에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성리학의 대가시라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겁니다. 이기이원론, 이기일원론과 같이 학창시절 윤리시간에 골 싸매게 했던 이론인데 향기만 맡아도 어지러운 걸 어떡합니까.

아시다시피 조선시대 통치이념은 성리학입니다. 고려조 불교의 폐단을 근절하는 이념으로 정도전, 하륜 등이 성리학을 조선조의 국시(國是)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면면히 계승돼 오다 최전성기를 맞은 것은 그로부터 300년 후인 16세기입니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선생이 등장했던 거죠. 그리고 한국적 성리학이라는 사상적 기초와 토대를 마련하고 평생을 헌신해온 분 구암 이정 선생이 있었습니다.

▲ 구암 이정 선생이 후학양성에 매진했던 구계서원의 모습
구암 선생은 1512년(명종 7년) 지금의 사천시 사천읍 구암마을에서 태어나 나이 12살에 경상도 하과에서 장원을 하고 25살에 문과 별시에서 장원급제를 한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역사적으로 시험을 쳐서 관리를 뽑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베트남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하죠. 그 중에서 베트남은 과거 비중이 낮고 우리나라와 중국이 과거제를 중시했는데요, 신분과 관계없(물론 후대에는 변질됐죠)이 입신양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박이 터질 만큼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푸른역사, 2003)을 보면 정조 24년 정시(庭試) 초시(初試)에 응시한 사람은 이틀에 걸쳐 21만 명이었습니다. 당시 도성 내 인구가 2~30만 명이니 현재 서울 인구가 천만 명이라고 치고 7백만 명에서 천만 명이 모두 고시시험을 치렀다는 거죠.

이 중에 달랑 33명만 합격을 할 수가 있었고요. 이 때문에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합격자들의 평균 연령이 대략 30대 중반이며 50대 이상이 15%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퇴계 선생도 34살에 합격을 했으니 대충 평균치였네요.

그런데 구암 선생은 그냥 합격이 아니라 장원급제입니다. 우오오~ 예전에 본고사, 학력고사 시절에 전국1등에게 관심이 쏠리던 걸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기도 한데, 실제로는 그 정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하늘 천 따지를 외운 모든 사람이 외경의 눈으로 바라보던 등용문을 수석으로 통과했다는 것이니까요. 물론 조선 중기와 후기의 경쟁률을 동급으로 놓고 비교할 순 없지만 입지는 마찬가지였겠죠.

선진리성의 와룡문화제와 더불어 펼쳐지는 구암제는 올해로 5회를 맞습니다. 구암제 행사로는 삼일유가행렬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백미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재현이라고 할 텐데요, 전국에서 대략 300명 정도가 참여해 서울을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큽니다. 반응도 그만큼 크다는 뜻인데요, 형식은 이렇습니다.

사천시장이 용포를 입고 시제를 발표하는데, 다섯 글자 가운데 넉 자는 미리 알려주고 마지막 한 자만 발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지를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한시 짓기가 뭐 그리 힘들까 싶었더니 이게 또 장난 아니네요. 한자는 글자마다 음(音)이 평상거입(平上去入)이라고 해서 평탄하게 내는 소리(平聲), 길고 높은 소리(上聲), 장중하게 내리는 소리(去聲), 짧게 들이는 소리(入聲) 네 가지 리듬을 가진다고 합니다.

글자마다 다르니 이런 걸 다 알아야겠죠. 조선시대 당시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최소 43만 자를 기본적으로 외워야 했습니다. 산술적으로 하루 250자씩 부지런히 외워도 5년이나 걸리고 여기에 자기 주관을 가지고 의견을 개진해야 했으니, 그저 놀라움을 넘어 의욕마저 잃을 지경입니다.

물론 구암제 기간에 열릴 과거시험 재현이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의관을 정제하고 한시를 짓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분위기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장원급제를 하면 당시의 복장과 절차를 거쳐 유가행렬도 하는데요, 한시에 조예가 있다면 한번쯤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구암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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