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란 미래에 대한 가장 나쁜 예측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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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란 미래에 대한 가장 나쁜 예측가이다
  • 음미하는 삶 시민기자
  • 승인 2014.03.1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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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t is the worst predictor of the future.

이번 칼럼의 제목은 사실은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제목이 되지 못한 이유는 단지 그 길이가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와 같이 본질적이지 않은 이유로 결정되고 있지 않을까?

최선이 아니라 차악이 지배하는 이유도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이처럼 칸에 맞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원래 이번 칼럼의 모토는 아래의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단지 이미 흔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의심받고 거부당한다."

New opinions are always suspected, and usually opposed, without any other reason but because they are not already common.
-John Locke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도 역시 역사성을 벗어날 수는 없다.

아주 혁신적인 것 역시 과거의 산물이라는 것을 아래의 예는 보여주고 있다.


"미국 나사의 로켓의 부품의 규격은 철도를 통해서 운반해 오기에 적합하기 위하여 철로의 넓이로 설계된다.

그리고 선로의 넓이는 과거 마차를 끄는 말 두 마리의 어깨너비에서 유래하였다.

최첨단을 가르는 멋진 스포츠카의 엔진의 힘 역시도 말 한 마리의 힘(1마력)으로 측정되지 않는가."

그럼으로써 과거란 새로운 시도나 미래에 장애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안전한 예측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장 안전하기 때문에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되는 것이 이 무사안일의 정신일 수도 있다.

자기가 잉태한 가장 멋진 선물인 이 "창의적인 정신"을 가장 표나지 않고 가장 죄책감 없이 안락사시키는 것에 우리 모두가 돕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할 때가 한 번쯤은 오는 것이다.

골목대장 뽑기라든가 줄서기 잔치라든가 해서 여러 가지로 비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천시민의 대의권자를 찾는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는 마당에서, "창의적인 정신" "역사성의 표상"을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배부른 소리인가 자책하게 됨은 어쯤인가.

의심받고 거부당하는 것만이 새로운 주장이 갖는 운명은 아닐 것이다.

가장 비범한 생각은 가장 상식적인 인간에게도 자신을 혁신할 비전을 보여줄 수 있기에... 정치인의 대상과 정치인은 서로를 위해 존재함이 유용하기에... 서로에게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도전하는 것이기에...

지금이라도, 사천에서 만이라도, 유권자와 정치인이 '새로운 정신', '창의적인 비전', '역사성의 실현' 그리고 '솔직함'을 추구하였으면 한다.

"위대해진다는 것은 오해받는다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실체를 모두다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저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 되겠다.

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점점 더 오해받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런 말이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전혀 위대하지 않다는 사람, 남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자각하는 사람,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오르더라도 항상 올챙이 적 열정과 모험심을 잃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점점 더 위대한 사람으로 오해하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과거라는 가장 나쁜 예언자의 예언에 빠져있는 오늘을 본다. 새로운 시도 역시도 먼저 의심하고 거부하는 질병에 빠져있다.

오늘도 거리에서 많은 명함과 마주하게 된다. 그 명함에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다. 우리의 모습에 영합하는 미래가 거기에 담겨있다.

그 모습 속에서 낙관을 찾을 수도 비관을 찾을 수도 있다. 낙관과 비관의 거리는 어색한 연인의 마음의 거리 마냥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이 마음의 거리가 단지 연인 사이의 문제라면 이렇게 가벼운 충고를 던질 것이다.

그냥 우리 한 걸음 다가가 보면 어떨까요?

그래서 그 마음의 거리 좁아질 수 있다면 마치 다가오는 봄처럼 우리 옆구리가 덜 시리지는 않을까요?

이런 시도가 지금 우리들에게도 효과가 있을는지는 미지수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A씨, B양이라 할지라도 유권자와 정치인으로 만날 때는 어쩔 수 없는 마음의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긍정적이기까지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올 해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후보 집단 안에서 한 가지를 도출해 낼 수 있다.

그들은 가능성을 보고 출마했고, 그 가능성은 우리들이며, 즉 우리들이라는 돋보기를 통하여 맞추어진 초점에서 태양빛은 점화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우리들의 리그이며, 우리들의 리그는 냉소와 비관의 대상이 아니라 열정과 관심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참여정신으로부터 우리들을 괴리시키기 위한 수많은 미디어와 방해매체에 접하게 되지만,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 또한 하나뿐이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것, 주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란 결국은 과거의 역사의 도전에 응전하는 현재의 전사에 의해 획득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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