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2월은 석별의 달이다. 졸업하는 학생들만 학교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교사들도 떠난다.

요즈음 세태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할 짓이 없으면 면서기라도 하지’라고 했고, 대학 졸업자들은 ‘하다하다 안되면 접장이라도 하지’ 하던 시절이 있었다.

접장이란 교사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지금 정년으로 혹은 몇 년 앞서 명예퇴직하고 학교를 마감하는 교사들은 얼추 그 시절 교직에 몸을 담았던 70년대 학번 세대다. 당시 교사들은 교직은 天職이 아니라 賤職이라고 자조하곤 했다.

이른바 제대로 풀리지 못해 ‘할 수 없이 선생’을 시작한 사람들은 설움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퇴직하는 교사에게 지난 교직 생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이 무엇이냐고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다.

“음, 1정 연수비를 싸워서 받았던 것이 기억에 남네요.”

처음에 교사들은 2급 정교사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3년 이상 근무하면 받게 되는 연수인데 한 달 남짓 교육연수원에서 교육을 수료하면 1급 정교사 자격증을 부여했다. 그래서 이 연수를 통칭 ‘1정 연수’라 부른다. 왜 이 연수비가 문제가 되었냐면 다른 직종의 모든 공무원들은 연수를 받을 때 다 연수비를 제대로 지급 받았는데 유독 교사들에게만 주지 않았던 것이다.

교사들은 연수원 근처에서 하숙을 했는데 자비로 충당해야 했다. 한 마디로 ‘먹고 자고, 움직이는 것’은 알아서 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직활동을 하면서 ‘먹고 자고를 알아서 하는 공무원은 방위병과 교사 밖에 없다’란 말이 나왔다.

당시 교사들은 시쳇말로 ‘호구’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1987년이 되자 상황이 달라진다. 교사들의 자발적 대중 조직인 교사협의회가 창립되고 불공정한 처우에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더 이상 교사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경남교사협의회 소속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연수비를 돌려달라며 연수거부에 들어갔고, 이들 교사들에게 도교육청 관리국장이란 이가 나와서 한 말이다. 당시 교육 당국의 인식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여러분들은 교직에 발을 디딘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수익자 부담 원칙’이란 것이 있어요. 어떤 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거기에 필요한 비용을 대야 한다는 원칙이지요. 지금 연수비를 달라고 떼를 써는 모양인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1정 연수를 마치면 호봉이 하나 오르지요? 또 주임교사를 할 수 있는 자격도 생기지요? 이러한 혜택을 온전히 누가 볼까요? 내가 봅니까? 아니면 연수원이 봅니까? 교육청이 봅니까? 바로 여러분들이 수혜자 아닙니까? 이제까지 여러분들의 선배들도 다 그렇게 해왔잖아요. 지금까지의 일은 없었던 일로 할 테니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실로 돌아가세요.”

교사들은 교실로 돌아가는 대신 도교육청으로 진군했고 결국 연수비를 지급 받았다. 교사들 스스로의 힘으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법이다. 이 경남에서의 사례가 효시가 되어 지금은 대한민국 모든 교사들이 모든 공무원처럼 연수비를 제대로 받고 있다.

이 시절에 젊은 교사 생활을 보냈던 이들 중에 이번 주 정년퇴직하는 70년대 초기 학번 교사들은 자비로 연수를 해야 했을 것이고 명퇴하는 70년대 후반기 학번 교사들은 제대로 연수비를 받았을 것이다.

동시대를 살면서 불과 몇 년 차이로 이들의 처우가 달라진 것은 그 시대가 전환기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렇게 한국 교육사의 전환기를 보냈고 이제 함께 학교를 작별한다.

멋진 인생의 제 2막이 펼쳐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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