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 작가의 사천삼천포愛 빠질 만한 이야기-19

▲ 대중 없던 통학버스에 타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던 학생들.

현재 시즌3으로 진행하고 있는 TV예능프로그램 1박2일이 지금은 조금 시들하지만 한 때 그들이 방문한 지역은 광풍처럼 특수를 누리곤 했습니다. 특히 그 중에 미모를 담당하던 이승기가 서울여행에서 혜화동을 누빌 때 벽화로 유명한 이화마을을 방문했고, 그 이후 이화마을은 서울여행에서 꼭 들러야 하는 유명 관광지가 됐습니다. 벽화가 가져온 놀라운 효과라고나 할까요.

더 유명한 곳도 있죠. 통영의 동피랑 마을은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가 이 소식을 들은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낡은 집 담벼락마다 알록달록한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전국에서 관광객이 찾는 지역 최대의 명소가 되었고, 카페와 맛집이 자리를 잡으면서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코스가 되었네요. 그야말로 벽화가 이뤄낸 기적입니다.

벽화마을의 성공 이후에 전국에 벽화거리가 속속 조성되었습니다. 정부차원에서 마을개선사업을 하고 있고 기왕이면 특색 있게 꾸미는 게 좋을 테니, 벽화는 외곽지역이나 시설이 낙후된 마을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좋은 돌파구였던 셈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사천시 벌용동 골목길인 ‘7080벽화 골목길’입니다. 예총 사천지부의 재능기부로 이뤄졌다고 하네요.

골목길로 접어들면 양쪽으로 그려져 있는 익살스런 그림에 미소를 짓게 됩니다. 검은 교복에 금장단추를 한 학생들의 모습에서 폭압적이던 그 시절이 되살아나긴 해도,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된다고 했나요? 오히려 반가운 기분입니다. 리영희 선생께선 『동굴 속의 고백』을 통해 교복과 같은 ‘제복의 사상’은 ‘규격화 사상’이라고 질타하셨지만, 그런 심오한 뜻보다는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스위치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요.

7080벽화 골목길은 과거 이 곳의 추억을 되살려낸 곳입니다. 삼천포 중·고등학교와 삼천포 여고에 다니던 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까지, 삼천포로 유학을 온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에서 자취나 하숙을 했고 새벽의 찬 공기를 맡으며 통학을 했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하숙이라는 기숙 시스템을 접해본 적도 없을 테지만, ‘응답하라 1994’라는 TV드라마를 통해서 많이 알려졌으니 부연설명이 필요하진 않겠죠.

▲ “마을집의 들창이 이렇게 구닥다리 텔레비전이 되었네요.”

70-80년대에 학교에 다녔다면 가족이랑 함께 방문했을 때 정말 풍성한 이야기가 쏟아질 것 같습니다. 학교에 가려면 정말 콩나물시루 같았던 버스에 어떻게 해서든 올라타야만 했고, 버스 문에는 마치 꿀을 먹기 위해 달려든 벌떼 같이 사람들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더 이상은 발 한 쪽도 걸치지 못할 것만 같은데, 안내양 누나가 “좀 들어가세요!”라고 외치며 쑥쑥 밀고 나면 안내양 누나가 문을 두드리고 “오라이~!”를 외칠 자리가 척 하니 나왔죠.

그렇게 버스에 시달리고 나면 풀을 먹여 빳빳하게 다려 입은 옷도 당연히 구겨집니다. 그 뿐인가요? 명찰, 뺏지(badge)가 사라지기도 하고, 아침에 나올 때만 해도 멀쩡하게 달려 있던 단추가 어디론가 실종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호주머니에는 여분의 단추와 옷핀이 비상용으로 늘 대기 중이었고, 저 멀리 교문이 보이면 문방구 유리창에 비춰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챙긴 것 같아도 교문을 지키고 선 선도부에게 사정없이 적발이 되네요. 아뿔싸! 그만 교복 목깃에 부착하게 된 하얀 스펀지 깃을 빼먹은 게 아니겠습니까. 엎드려뻗쳐! 조례가 마칠 때까지 기합을 받을 생각을 하니 아찔합니다.

수업시간도 만만찮습니다. 짝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선생님께선 사정없이 기합을 줍니다. 뭐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외롭진 않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말뚝박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되고 이럭저럭 수업이 끝나고 나면 마침내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옵니다. 오늘 삼천포 여고에 다니는 달자랑 만나기로 했는데, 이 앞의 여학생은 무슨 전화를 이렇게 오래하는 걸까요?

그 때 그 시절을 요즘 아이들이 이해를 할까 싶지만, 영화, 드라마, 추억의 술집 등 여러 가지 콘텐츠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접하고 있는 만큼 기본적인 대화는 되네요. 사실 저도 교복세대는 아닙니다. 중학교 진학 직전에 교복·두발 자율화가 되었고 고3때 다시 하급생부터 교복을 입히는 통에 끝내 교복이라고는 구경조차 못해봤습니다. 그래서 아쉬움 때문에 교복에 대한 애틋함이 더 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벽화마을의 아이콘인 날개그림을 대신할 나비 벤치.

그러고 보니 졸업식장에서 교복에 밀가루를 뿌리고 심지어 찢기도 했던 것은 억압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의미였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조차 모르고 무조건 따라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고 하죠? 하긴, 옷값이 얼만데 밀가루를 뿌리고 옷을 찢겠어요.

7080벽화 골목길은 2012년 10월에 완성됐고 당시에 조금 주목을 받은 편인데, 그때만큼 관심이 뜨거운 건 아니지만 접근성이 좋아서 다녀가는 사람도 제법 됩니다. 삼천포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뒤편이라 먼 길 떠나기 전에 표 끊어놓고 잠시 다녀갈 수 있으니까요. 여기는 그렇게 잠시나마 과거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의 기능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 선생님보다 더 무섭던 교문 앞의 선도부원.

아쉬움 하나, 이곳에는 벽화마을의 단골메뉴인 날개가 없습니다. 대신 나비 벤치가 있어 날개 벽화를 대신하는데요, 굳이 날개가 아니더라도 배경삼아 찍을 수 있는 벽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쉬움 둘, 교회와 유치원 벽은 아무 그림도 없네요. 함께 공공미술에 참여했다면 골목길 그림이 보다 풍성해졌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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