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시간이 흐르는 ‘주전자가 있는 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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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시간이 흐르는 ‘주전자가 있는 정물’
  • 김준식 객원기자
  • 승인 2014.02.1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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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eben mit Kanne, 1635
▲ 삶과 시간이 흐르는 ‘주전자가 있는 정물’

주석으로 만든 주전자(jug, 독일어로는 Kanne)에 비치는 빛의 부드러운 반사, 뒤편으로 이어지는 짙은 그림자, 그리고 주전자 주위를 둘러 싼 공기의 느낌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 시기 작가들의 공통적 해석에 의한 회화적 표현이다. 이 그림 전체에 산란되는 빛은 렘브란트의 회화사적 공헌으로서 그림에 있어 ‘빛의 인용’이다.

렘브란트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이 그림의 작가가 그의 그림에서 이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페테르 클라스(Pieter Claesz 1597 ~ 1660) 독일에서 태어났다. 1620년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일생 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 이 시기에 네덜란드에서는 정물화가 유행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을 그린 그림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러한 정물화들은 아침식사 그림(ontbijtjes - ‘온베찌스’라고 읽는데 네덜란드어로 ‘아침식사’라는 말이다.)이라고 부르는데, 페테르 클라스는 빌럼 클라스 헤다(Willem Claesz Heda)와 함께 네덜란드 회화의 새로운 양식으로 부상한 ‘아침식사 그림’을 발전시켰다.

‘온베찌스’에서 출발한 이들의 그림은 점차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에 이르는 철학적 문제로 확장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탁자위에 음식뿐만 아니라 해골이나 촛불(특히 불꽃이 꺼진 뒤 피어오르는 연기를 포착), 그리고 시계, 나침반 등 음식과는 무관하지만 삶의 문제로 유추될 수 있는 여러 물건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식탁은 매우 풍성하다. 학세(독일식 돼지고기 뒷다리 요리)가 있고 빵도 있다. 호두와 비슷해 보이는 견과류도 있고 쨈을 담을 만한 작은 용기는 숟가락이 걸쳐져 뚜껑이 반쯤 열려 있는데 그 옆의 작은 유리잔은 앞쪽의 큰 주석 잔과는 다른 방향으로 넘어져 있다. 국자는 넘어진 잔에 가려 자루만 보이고 유리잔에는 음료인지 술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반쯤 담겨져 있다. 식탁보는 한 쪽 귀퉁이가 말려 올라온 탓에 빵을 담은 접시가 약간은 불안하게 보인다.

이것은 모두 상징이다. 불그레한 고기 빛이 선명한 학세는 현재의 시간이다. 클라스가 즐겨 사용하는 색은 무채색 종류 즉, 회색과 짙은 갈색, 그리고 백색인데 이 그림에서 유채색에 가까운 것은 고기와 빵 뿐이다. 그 두 개의 사물은 현재의 삶이다. 빵 밑에 불안하게 위치한 쟁반 역시 불안한 현재의 표상이다.

그런가하면 넘어진 두 개의 컵은 과거의 삶이다. 시간의 경과를 그림을 보는 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작가의 장치는 바로 ‘넘어짐’이다. 즉, 두 개의 컵은 오래 전 다른 시점으로부터 출발하여 또 우리를 관통하는 시간의 표상인 셈이다. 그리고 유리컵 속의 액체와 말려 올라간 식탁보는 미래의 암시다. 언젠가는 비워질 음료와 누군가에 의해 바르게 손질 될 식탁보는 미래에 대한 작가의 의지이거나 또는 기대일 수 있다.

이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혼란스러운 사물의 배치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매우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려 올라간 식탁보의 어지러움을 저그(주전자)가 보완하고 있고 학세의 다리가 위로 치켜 올라간 것을 국자의 손잡이 장식이 식탁보 밑으로 내려옴으로서 화면은 상하 조화를 이룬다. 두 개의 컵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넘어짐으로서 역시 균형을 이룬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가 전체 그림을 조화롭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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