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명 성방마을 50년 전 기록물…새마을운동 앞뒤 농촌 현실 한눈에

▲ 사천시 곤명면 성방 마을에서 50여 년 전 각종 행정서류들이 발견돼 눈길을 끈다. 사진은 성방 마을 김영태 이장이 관련 서류들을 살피는 모습.

‘불법 소지 무기 색출에 관한 건’, ‘사방사업 개인별 출역 명세표’, ‘양곡 출하 명세철’…. 얼핏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제목들이다.

색이 바랠 대로 바랜, 심지어 만지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삭은 종이가 그 세월을 말해 준다. 50년을 훌쩍 뛰어넘어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인공은 사천시 곤명면 성방리 마을회관의 낡은 캐비닛과 그 속에 있던 낡은 서류철이다.

이 캐비닛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마을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대략 20년 전쯤 마을회관을 새로이 지었으니, 그 무렵부터 그 이전 마을서류들을 캐비닛에 담아 보관해 왔으리란 게 마을사람들의 추측이다.

그러던 2012년, 지금의 마을이장인 김영태(52) 씨가 마을회관을 대청소 하던 중 열쇠도 없이 방치돼 있던 캐비닛을 억지로 열었고, 그 속에서 오랜 세월 잠자던 역사의 기록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전쟁이 끝나 몇 해 지나지 않던 1958년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67년까지, 성방마을의 역사이자 대한민국 근대화의 증언이라 할 각종 기록물들이 방 안 가득 펼쳐졌던 것이다.

17일 만난 성방마을 이장 김 씨는 “회의실을 전시공간으로 꾸미기 위해 청소를 하던 중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캐비닛을 뜯었는데 어마어마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캐비닛에서 나온 서류에는 뉘 집에 몇 명이 살고, 교육수준은 어떠하며, 소와 돼지 등 가축을 얼마나 기르는지 따위 기초 정보부터 시작해, 누가 구호미와 비료를 얼마나 받아갔는지, 사방사업 등 각종 부역에 얼마나 참여했는지 등등 당시 마을사람들의 생활상이 그대로 담겼다.

또 서류를 통해 당시 ‘군경 기록 관계’ ‘병사 관계 서류’ 등이 철저히 관리됐음을 알 수 있고, 국가사업이던 새마을운동을 일선 마을단위에서 어떻게 정착시키려 했는지 짐작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성방마을 이장 김 씨는 “캐비닛에는 국가 또는 지자체에서 보낸 각종 행정서류와 마을주민들의 회의록 등이 있었는데, 국가정책이 민초들에 어떻게 전달되며 실현되는지 과정을 살피는 데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방마을에선 이 서류들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지난해 국가기록원에 ‘기록사랑마을’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안타깝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가기록원 조성민 주무관은 뉴스사천과 전화통화에서 “마을단위 근대 행정자료가 고스란히 보관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록물이지만 전시공간이 마땅치 않아 아쉬운 평가를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기록사랑마을’이란 마을단위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기록물을 보존하고, 이를 전시 · 활용해 국민들에게 기록관리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려는 목적으로 국가기록원이 지정하는 마을이다.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되면 전시실 내부 장식과 개관식 등 비용으로 4500만 원이 지원되는데, 성방마을의 경우 상설전시공간이 없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셈이다.

따라서 성방마을에선 상설전시공간을 마련해 ‘기록사랑마을’에 다시 한 번 도전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

나아가 115건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에 어떤 기록이 담겼는지 꼼꼼히 살펴 지금보다 더 쓸모 있게 쓰일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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