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코테크의 그림들 ⑭

▲ Der verlorene Sohn

교외의 허름한 유곽에서 세 쌍의 남녀와 한명의 노파가 모여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다. 화면에 대각선으로 누워있는 남자의 옷이 등불에 푸르게 비치고 있다.

그 남자의 종아리에는 매듭이 묶여져 있는데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군인들 복장이 이와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 남자들의 모자들도 예사롭지 않다. 근위병들이 쓰는 깃털모자에 가깝다. 아마도 근무를 마친 군인들이 근처 술집에서 아가씨들과 술을 마시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헤리트 반 혼트호르스트(Gerrit van Honthorst)는 네덜란드의 화가로 유트레히트 화파의 대표적 화가이다. 유트레히트 화파란 17세기 초, 네덜란드 유트레히트를 중심으로 활약한 일군의 화가들을 말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교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카톨릭을 신봉했고 동시에 어김없이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온 이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가 카라바조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아 이들을 ‘카라바제스키’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혼트호르스트는 그 ‘카라바제스키’ 최초의 인물이다. 그도 이탈리아에서 10년간 유학을 다녀왔고 그의 모든 작품에서 카라바조의 영향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도 카라바조의 절대적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 빛이 그림을 지배하고 있다. 거의 화면의 중앙에 있는 큰 촛불과 그 촛불을 가리고 있는 남자의 술잔에 산란된 빛이 방 전체를 환하게 비추지만 그 광선은 확산성이 높지는 않다.

사람들 모습 외에는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카라바조의 영향이다. 카라바조의 “성 마테를 부르심”에서처럼 화면에 한 줄기 빛을 비치고 그 빛은 전체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카라바조의 빛’이다.

빛에 의해 두드러지는 인물의 부분과 빛에 의해 사라져버린 배경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조화롭게 구성되어진 이 그림은 카톨릭의 성스러운 분위기는 전혀 없고 남녀의 자세가 매우 자유로운 모습으로 지나치게 세속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이는 당시의 분위기로 볼 때 거의 혁명적 그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초엽, 아직은 중세의 분위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그 무렵 성스러운 성화 대신에 민중의 삶에 눈을 돌려 이 그림을 그린 혼트호르스트의 용기에 가까운 독창성은 이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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