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산공원 산책로에는 매서운 바람이 부는 지금도 동백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만 10년차 사천시민이 되겠네요. 막 이사 왔을 때는 뚜벅이었지만 버스를 타고 뽈뽈 잘만 싸돌아 다녔습니다. 오히려 차가 생긴 이후로 여행의 참맛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정말 여행은 대중교통이 진리입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바닷가 동네로 이사 왔으니 회를 먹어야겠다 싶어서 버스를 타고 삼천포까지 내달렸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노산공원 앞의 횟집이었고요.

회 한 접시에 소주잔 기울이며 새로 이사 온 곳에 대한 감상을 풀어놓던 중 옆에 있는 노산공원의 명칭을 보며 잠시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노산이라는 명칭에서 아무래도 독재부역 논란의 노산 이은상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향이 여기였나? 그래서 노산공원이라고 이름을 붙인 건가? 이런 생각이었던 거죠.

나중에 생각났을 때 찾아보니 노산(鷺山) 이은상과 노산공원(魯山公園)은 한자 자체가 다르네요. 즉,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괜히 우중충한 상상을 했던 겁니다.

명칭에 대해서는 대략 두 가지 유래가 있네요. 과거 이곳에는 지역 인재의 요람이자 산실인 서당 호연재(浩然齋)가 있었고, 밀물 때는 섬으로 바뀌게 되니 징검다리를 건너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 징검다리를 두고 ‘노다리’라고 불렀고 그래서 ‘노다리산’으로 부르다가 노산이 되었다는 설입니다. 그리고 호연재의 팔문장 중에 노라는 호를 가진 분이 있어 노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 지역 인재의 산실이자 요람이던 호연재.
삼천포시로 승격되던 해인 1956년에 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마땅한 위락시설이 부족하던 예전에는 인근지역에서 최고의 관광지였다고 합니다.

다도해를 조망하는 절경에 놀이시설까지 있어서 가족과 연인들이 즐겨 찾았고 즐거운 한 때를 위해 다른 지역에서도 놀러오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지역주민들의 쉼터이자 산책을 하는 아주 조용한 곳이 되었습니다.

근처에서 상권을 형성한 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지만 차라리 조용한 것이 더 좋다는 느낌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봄부터 겨울까지 언제라도 아름다운 곳이라 사람들로 복작복작 거리면 별로일 것 같거든요.

노산공원은 돌아보는 재미가 있는 곳입니다. 풍광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위치한 조형물 등이 포인트가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바다 자체는 정말 좋은데 막상 사진을 찍으려고 들이대니 새파란 게 전부라 심심하죠. 이럴 때 갈매기 한 마리라도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와야 폼이 납니다. 노산공원의 모든 풍경과 정물이 그런 역할을 하네요.

▲ 1960년 대부터 운영된 노산공원 앞의 작은 여인숙.
입구부터 남다르죠. 안도현 시인이 트위터에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쁜 여인숙! 노산여인숙! 하루 숙박비 5천원이랍니다. 눈에 넣어 두고 싶은 곳. 경남 사천 노산공원 아래 있지요.”라고 말하던 노산여인숙부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공원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새파란 바다 가운데 빨간 등대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한국도로공사 선정 가장 아름다운 길 대상에 빛나는 창선-삼천포대교가 저 멀리 보입니다.

해안 괴석 위에는 탁 트인 바다를 느낄 수 있는 팔각정과 사천 대표어종인 상괭이, 참돔, 볼락, 전어를 형상화한 물고기상이 있습니다.

상괭이는 처음 듣는 이름이라 뭔가 싶어 찾아봤더니 한국 토종 고래로 쇠물돼지라고도 하네요. 해양 포유류 중에서 가장 작은 종으로 바다의 인어라고 불릴 만큼 사람과 비슷한데요, 현재 우리나라 연안에 3만여 마리 정도밖에 살지 않는 세계멸종 위기종이며 최근에 남해연안에 집단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합니다.

운이 좋으면 삼천포대교 아래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고 하네요.

물고기상에서 데크를 따라 반대편으로 가면 우수에 젖어있는 은방울자매의 삼천포 아가씨 동상이 있습니다. 사람이 근처에 가면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 배는 떠나간다. 어린 나를 울려놓고 떠나가는 내 님이여. 오실날짜 일 년이요, 이 년이요. 돌아와요, 네~ 돌아와요, 네~ 삼천포 내 고향으로”하고 노래가 흘러나오죠.

삼천포항의 명성은 쥐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남해의 작은 항구를 전국에 널리 알리는데 결정적 공은 은방울자매의 노래 <삼천포 아가씨>에 있을 겁니다.
▲ 삼천포 아가씨와 빨간 등대.

노산공원 안에는 지역 인재의 요람이자 시대정신을 고취시켰던 서당 호연재(浩然齋)가 지난 2008년에 복원돼 있습니다.

호연재는 영조 46년(1770년)에 건립된 학당으로, 구한말 호연재에 모인 문객들이 나라를 잃은 슬픔을 토로하는 시문집을 펴내자 일본 경찰이 1906년에 강제 철거했다고 합니다.

철거되기 전 호연재는 지역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기관 보흥의숙으로 변신하였고 철거되기 직전해인 1905년에 지금의 삼천포 초등학교의 모태인 광명의숙이 되었습니다.

이 호연재 바로 앞에 삼천포가 낳은, 한국 현대시의 큰 별을 담은 문학관이 있습니다. 모윤숙, 서정주, 유치환이라는 당대 최고의 시인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등단한, 정말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하디착한 서정시인 박재삼을 기리는 문학관입니다.

내용이 길어졌네요. 박재삼 시인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어서 이야기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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