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 작가의 사천삼천포愛 빠질 만한 이야기-15

▲ 서택지는 1931년 조성된 약 18만m2의 늪지형 저수지로 주변에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불어난 살 좀 빼보겠다고 두어 달 동안 하루에 6~7km씩 걸어 다닌 적이 있습니다. 말이 6~7km이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는 속보로 걸어야 하니까 꽤나 힘들었네요.

예전에 헬스클럽에서 파워워킹 할 때는 러닝머신 위에 달린 텔레비전을 보면서 걸었고 그래서 한 시간 정도 걷는 거야 일도 아니라 생각했는데, 경제적으로 운동하겠다는 마음에 일반 도로를 걷다보니 참 지루한 겁니다.

이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오가는 자동차 걱정 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 이런 길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다가 알게 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용현면 온정리에 위치한 서택지입니다.

선선한 봄가을에는 사색의 정겨움을, 새파란 풀잎도 땀을 흘리는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마음까지 스산한 겨울에는 고즈넉한 낭만을 안겨주는 참 멋진 곳입니다. 그냥 한 마디로 운치 있는 곳입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서택지는 붕어 낚시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1931년에 준공된 6만 평 규모의 늪지형 저수지이며, 꾼들이 흔히 하는 말로 붕어가 감잎부터 월척까지 다양하게 낚이는 걸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사천에 살기도 전부터 서택지의 명성을 익히 들었으니, 바로 낚시TV 때문이었습니다.

▲ 한 시간 정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서택지 산책로.

넉자짜리, 그러니까 120cm 붕어가 출현을 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곳이 있구나……싶었던 거죠. (당시 석자짜리 식탁을 살까, 넉자짜리로 할까를 고민하던 시기라 더욱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석 자 정방형 90cm짜리 식탁을 샀는데, 그 후 식탁을 볼 때마다 이 보다 큰 붕어가 있구나 싶었네요)

사천으로 이사 와서야 “여기가 거기였어?”라고 생각했던 곳이 하나는 다솔사요, 또 하나가 서택지였는데 막상 와보니 산책하기에 또 그렇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산책인지 운동인지 구분되지 않는 이유로 종종 찾는데, 그때마다 낚시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낚시라고는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전혀 모르는 취미 같지가 않네요. 언젠가는 낚시를 할 것 같다는 기분, 그렇게 생각을 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석제의 단편집 『지금 행복해(2008)』 중 《낚다 섞다 낚이다 엮이다》에서 마흔 넘게 낚시터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낚시에 미쳤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낚시도 진짜 도를 닦듯이 열심히 하다보면 유명한 낚시터나 큰 데보다는 후미지고 작은 데를 찾게 돼. 산중 계곡을 막아서 만든 조그만 저수지 같은 데 말이지. 사실 계곡형 저수지는 물이 차서 고기가 별로 없어.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잘 안 가고 그래서 가끔 대물 손맛을 볼 수도 있는 거지.”

서택지 넉 자짜리 붕어낚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즈음이며, 마흔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시점에서 읽었던 책이라 저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노을 지는 서택지에 앉아서 세월을 엮다가, 가끔 눈 먼 붕어나 잉어도 건지고 그러다보면 넉 자짜리 대물도 올라오지 않겠나라는 환상 말입니다.

▲ 서택 사랑테마공원.

지금도 서택지에 관한 소식은 낚시와 관련해서 들려옵니다. 수심이 얕고 해안에 인접해 있어 초봄 그러니까 2월이면 붕어가 입질한다고 조황정보에서 뜨거든요. 예전부터 전국의 조사들이 사랑하던 곳이며 한 때는 자리다툼도 정말 치열했다고 하는데, 한동안 낚시금지조치가 내려지면서 좀 조용해지긴 했습니다.

다시 해금되었지만 최근에 사랑테마공원으로 재단장하면서 마땅하게 낚시를 즐기기엔 편치 않을 것 같습니다. 수초가 자랄만한 지역에 모두 데크 공사를 해놔서 엉망이 됐을 텐데요, 붕어가 제대로 살 수 있었을까요.

낚시에 문외한이라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니 뭐라고 말하기가 그렇고, 산책로로는 정말 환상입니다. 수변을 따라 데크가 놓여 있고, 주변을 휘돌다가 저수지를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봄과 여름이면 연꽃이 활짝 피어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그때는 정말 싱그럽습니다.

찰랑찰랑 물위를 걷는 느낌, 우주를 유영하는 게 이런 기분일까요. 부는 바람에 물살이 일어 교교하게 파문이 번져갑니다. 세월의 주름살 같은 물결에 머리를 헤집던 잡내까지 떠나보내니, 이것이 바로 선경(仙境) 아닐까 싶습니다.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면 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차를 양 손에 쥐고 걷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보다는 마음까지 포근하게 감싸주는 연인의 손을 잡고 걷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여기는 바로 사랑테마공원이거든요.
사랑테마공원으로 거듭난 서택지, 참 멋지다 싶을 만큼 조성이 잘 돼 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한 눈에 시원한 전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물가로 내려가서는 느릿한 걸음으로 주변을 걷습니다. 인간의 정서에 한걸음 불쑥 다가서는 공간이란 바로 이런 것이겠죠.

운동 삼아 갔을 때도 적당합니다. 붉은 아스콘 길을 따라 파워워킹 했을 때 시간과 거리 모두가 딱 적당한 한 시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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