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잠깐 노출되었을 뿐인데 단숨에 ‘채현국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 진정한 ‘어른’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SNS에서나 지면을 통해 많이 소개되고 있으니 채 선생에 대해서는 웬만큼 알 것이다.

“재산은 사회의 것이다. 잠시 맡고 있을 뿐이지 자식에게 물려줄 성질의 것은 아니다.”

선생이 던진 한마디가 온 나라에 크게 울리고 있다.

그러나 막상 우리 지역 출신인데도 김장하 선생에 관해 아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선생은 정동면 출신으로 한약사이다. 사남면 석거리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 중이다. 채현국, 김장하 두 사람은 다르면서도 닮았다. 채 선생은 현재 학교법인 효암학원 이사장이고 김 선생은 남성학숙 전 이사장이다. 채 선생은 젊어서 광산업으로 큰돈을 만졌고, 김 선생은 한약을 달여 전국적으로 보급함으로써 꽤 많은 돈을 벌었다.

돈을 잘 번다는 것도 분명히 뛰어난 재능이지만 잘 쓴다는 것은 천부적 소질의 영역이다. 채 선생은 암울했던 유신, 군사 독재 시절 핍박받는 민주 인사들의 후원자여서 민주화의 마지막 보루라고도 불렸다. ‘창작과비평’의 운영비가 떨어지면 성큼 후원해 주었고, 셋방살이하는 해직 기자들에게 집을 사 주기도 했으니 참으로 통 크게 돈을 잘 쓴다.

김 선생은 소리 소문 없이 가난한 학생들에게 학비에 생활비까지 후원하는 ‘키다리 아저씨’였다. 10년 넘게 진주지역 정론지 <진주신문>의 최대 후원자였고, 남성문화재단을 설립해 시민단체, 문화단체를 지원하고 있다.선생은 사재를 출연하여 명신고등학교를 개교하면서 ‘학교가 완성되면 손을 떼겠다.’ 하였고 학교 시설과 교직원들 충원이 완료 된 몇 년 후 아무 조건 없이 학교를 국가에 헌납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다.

“돈은 똥과 같다, 한 무더기로 모아 두면 썩는 냄새가 진동할 뿐이지만 밭에 골고루 흩어 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

‘똥’이야기가 해학적이라기보다 숙연하게 다가온다. 언행일치가 지니는 묵직한 무게감 때문이다. 채현국 선생은 지금도 학교 운동장의 나뭇가지를 치고 있고 김장하 선생은 여전히 소박한 한약방 자신의 자리에서 약을 달이고 있다. 두 사람은 참으로 닮아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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