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로 상급학교 진학을 하면서 진주시로 유학을 갔을 때인 1960년대 중반이었다.

요즈음은 사천읍에서 진주까지 20여 분이면 넉넉하게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당시에는 참 길이 멀었다. 먼지가 풀풀 나는 비포장도로를 완행버스는 1시간 30분 남짓 달려야했다. 차를 자주 타지 않은 촌놈들은 대부분 차멀미를 해서 진주로 진학한 학생들은 자취하거나 하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주일 혹은 격주로 고향집을 다녀왔다.

진주 기차역은 시내에서 보자면 한 참 변두리인 망경동 끝머리에 있었고 시내버스 시발점이자 종점이기도 했다. 내 하숙집은 학생들 하숙집이 밀집해 있던 상봉서동에 있었는데 시내버스의 또 다른 한 쪽 종점이었다. 당시 시내버스 노선은 역전에서 출발하여 상봉서동까지 가는 한 노선밖에 없었고 균일 요금이었는데 학생은 할인 요금으로 받았다.

고향 집이 있는 사천에 갔다가 일요일 오후쯤이면 다시 하숙집으로 돌아왔는데 기차역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매번 난감했다. 역전에서 출발한 시내버스는 남강 다리를 건너서 진주시 대로를 달렸고 각 정류장 마다 승객들은 내리기도 하고 타기도 했는데 시발점에서 탄 나는 하숙집까지 가려면 종점까지 계속 붙박이로 끝까지 타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차비를 다른 승객들보다 많이 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길게 타고 간다는 것이 못내 염치없는 짓이라고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래서 짐짓 볼일이라도 있는 양 종점 몇 정거장 앞에서 내리곤 했다. 그리곤 2km를 타박타박 걸어서 하숙집으로 왔다. 그 정도만 타도 다른 승객들 보다 많이 타고 왔다고 생각하면서.

알고 보니 시골에서 올라 온 학생들은 다 그랬다. 자취를 하는 친구들은 쌀, 반찬가지 같은 먹을거리 때문에 짐이 많았다. 그렇지만 자취집 멀찌감치에서 내려서 그 무거운 짐들을 양손에 들고 터벅터벅 걸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진주 시내 아이들은 아무리 먼 거리를 타도 중간에 내리려 하지 않았고 그런 우리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 때도 도시 사람들은 참 염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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