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 작가의 사천삼천포愛 빠질 만한 이야기-13

삼천포대교에서 바라본 일출.
쌀로 밥 짓는 소리란 말이 있습니다. 이 쌀로 밥 짓는 빤한 소리의 속성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알 이야기의 쓸데없는 포장과 무한 반복입니다. 마치 질리지도 않고 먹는 밥처럼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쌀로 밥 짓는 소리가 되겠네요.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해맞이에 설렙니다. 지난해 보았던 해와 올해 보았던 해가 다를 리 없고 어제 본 해와 새해 첫날 본 해가 다를 리 없는데, 새해 첫날 첫 일출은 뭔가 굉장한…… 여하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굳이 평범한 날의 해와 새해 첫날의 해가 다른 이유를 따지자면 송구영신, 새로운 결심, 막연한 기대 등 희망을 담기 때문이겠죠. 여기에 사랑하는 가족 또는 연인이 있다면 똑같은 공간마저 특별하게 탈바꿈합니다.

예전에 한참 힘이 남아돌던 시절에 새해 첫날 첫 일출을 맞으러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지리산에서, 간절곶에서, 정동진에서, 소위 말하는 일출 명소는 다 가봤다 싶은데 딱히 그곳에서 본 일출이라고 해서 다르진 않았습니다. 귀와 코가 떨어져 나갈 것같이 추운 날씨라 오히려 벌벌 떨고 괴로웠다는 기억이 강했지만, 그마저 좋았던 것은 곁에서 온기를 전해준 연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일출명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입니다.

최근 전국에 광풍을 불러일으킨 케이블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문득 생각나네요. 그 중에서도 10화는 여러 가지로 참 기억에 남는데요, 드라마의 주인공인 하숙생들이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삼천포로 여행을 가는 내용이었죠. 사천과 삼천포의 통합 갈등에 “칠천포 어떻습니까?”란 말로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더니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 삼천포, 사천, 칠천포가 나란히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응답하라 1994에서 가장 사랑받은 포만 커플의 선상키스(사진=TV화면 캡쳐)
가장 압권은 바로 이 장면이었네요. 포블리 삼천포(김성균)와 여수 처자 조윤진(도희)이 삼천포의 아버지가 모는 배를 타고 선상 일출 보러 나갈 때입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서태지의 만수무강을 빌었다”던 윤진에게 삼천포는 “첫 키스 하게 해달라고...”라며 “근데 들어주셨다”고 답하며 깜짝 키스를 했죠. 새해 최고의 일출 명소는 연인의 곁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선상일출이라는 로맨틱한 상황이 더해졌으니 사랑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상할 지경입니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2014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사천 삼천포항을 찾는 관광객과 연인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실제 촬영장소로 삼천포는 단 한군데도 없다는 건데요, 뭐 그럼 어떻습니까. 남들이 만들어준 이야기에 살포시 얹혀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상일출 유람코스를 만들고 새벽마다 연인을 태워 출항을 하자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배에 오르는 연인들은 아예 대놓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려 키스를 하겠죠. 종래에는 ‘삼천포 선상일출 관람 및 키스 관광’이라는 희대의 상품이 탄생하게 될 겁니다. 원한다면 사진 서비스도 제공하면 되겠네요. 실제 촬영지가 어디인진 모르지만 드라마의 설정이 삼천포 앞바다인데, 다른 지역에서 이런 관광 상품을 내건다는 자체도 좀 웃길 것 같긴 합니다.

사천시는 해맞이 행사를 매년 삼천포대교공원에서 치르고 있습니다. 올해도 다름없는데요, 수많은 사람들이 창선-삼천포 대교를 빽빽하게 점령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이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그 열기 때문이라도 든든하기 마련이지만 미명의 새벽은 아무리 단단하게 중무장을 해도 뼛속까지 침습하는 냉기를 품고 달려듭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모이는 것은 나와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한해 무사안녕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겠죠.

여기에 조금 더 마음을 쓴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할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이 나라에 대한 기원입니다. 88세대, 월평균 88만 원을 받는 20대 비정규직들도 비전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이뤄졌으면 하는 것이 정말 간절하고도 간절한 소망입니다.

2010년 베스트셀러였던 김영하의 『퀴즈쇼』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제품도 레고 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 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헐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우리 부모 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그렇게 시대를 한탄하다가 이렇게 말을 맺습니다.

“우리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직업이 없다. 이게 말이 돼?” 말이 되지 않는 세상이 왔음에도 누구 하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낙수효과를 기대하라면서 대기업 우대정책으로 일관한 대가가 비정규직이라니, 돈이 없어서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조차 미뤄야 하는 불운. 단지 취업만 시켜 달라는 소박한 기원도 이룰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모순이 해결됐으면 하는 소망이 결코 과하진 않을 겁니다.

▲ 삼천포대교는 사천에서 손에 꼽히는 일출 명소다. 사진은 지난해 해맞이 모습
매서운 아침,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리는 것은 차마 심장을 부여잡고 울지 못해서일 겁니다. 그저 안타까움에 울분만 켜켜이 쌓이는 기분입니다. 쌀로 밥 짓는 빤한 소리조차 되뇌고 되뇌어야 할 간절한 소망이 되어 버린 시대, 2014년 새해에는 제발 그런 불운한 시대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희망의 일출을 볼 수 있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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