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작가의 사천사천포愛 빠질 만한 이야기 -12

▲ 보물 614호 사천매향비.

흔히 전라도는 맛의 고장이라고 하죠.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산다는 복에 남도 맛 순례를 자주 떠나는데요, 낯선 길을 헤매다 아무 곳이나 들러도 푸짐한 한상차림을 받을 수 있으니 헤매는 두려움보다는 어쩐지 기대가 좀 더 큽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나면 너그러운 마음에 산천경계도 아름다워 보이는데요, 포만감과 느긋함에 겨워 인적 드문 굽이굽이 국도를 달려가다가 무심결에 질마재를 넘었습니다. 질마재! 그렇습니다. 미당 서정주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는 곳, 역시 그를 기억하기 위한 장소가 있네요. 미당詩문학관입니다.

대한민국 시성(詩聖)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미당 서정주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겠죠. 그러나 시문학관에서의 경험은 참 씁쓸했습니다. 문학적 공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문학관을 보고 있으려니, 한편으로는 이 또한 미당 스스로 자초한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었네요. 친일, 독재미화 등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던 문둥이마저 외면한 그의 행적이 지금을 더욱 쓸쓸하게 했다 싶었습니다.

▲ 사천매향비 곁으로 가화천 지류가 흐르지만 과거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짐작할 수 있다.

뜬금없이 서정주 시인을 이야기한 건 그의 시집 『질마재 신화』에서 왠지 가슴에 와 닿은 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침향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궈 넣어둡니다. …… 중략…… 아무리 짧아도 2-3백년은 수저(水低)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천 년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오.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육수와 조류가 합수(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라던 <침향沈香>이란 시입니다.

침향이 뭔가 싶어 검색해봤더니 정신을 맑게 하고 부스럼과 종기를 치료하는 등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입니다. 비싸기는 또 얼마나 비싼지, 슬그머니 관심만 가졌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기백 년의 세월을 묵혀야하니 그럴 법도 하다 싶고 지폐 한 장에 벌벌 떠는 소시민으로는 도저히 탐낼 수 없으니 잊는 게 마음 편하죠. 그러다 침잠했던 기억이 불쑥 떠오른 계기를 우연히 만나게 됐으니, 바로 사천매향비(泗川埋香碑)였습니다. 무려 626년이나 묵은 침향이 있다는 게 아닙니까. 도굴을 할 것도 아니니 탐을 낸 건 결코, 절대 아닙니다. 그냥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는 거죠.

▲ 삼천포매향암각에는 구량량에 묻었다고 되어 있지만 이곳 또한 합수처이다.

곤명면 흥사리에 위치한 사천매향비(泗川埋香碑)는 고려 우왕 13년(1387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보물 제61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비석에는 모두 15줄 202자가 새겨져 있으며, 비문의 일부가 마멸되어 있긴 하나 내용을 보면 당시 승려 4,100명이 매향계(埋香契)를 만들어 향나무를 심고 비석을 세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전문가의 연구에 따르면 고려말기의 혼란한 상황에 해안지역에는 왜구들이 침탈이 극심해 나라와 백성의 무사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하네요. 그게 바로 매향의식이라고 합니다.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곳에 향나무를 잠그고 수백 년 또는 천년을 기다려 침향을 만드는 행위, 침향에 깃든 마음, 미당이 정말 적확하게 표현했네요.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라고요.

▲ 과거 향포산 처녀바위 글이라 불렸던 삼천포매향암각.

혼란했던 고려 말에 매향의식은 꽤나 많이 치러졌다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매향비는 전국에 모두 10곳이 알려져 있습니다.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어야 하니 주로 해안지역에 위치해 있겠죠. 그 중에서 사천에만 두 곳이나 됩니다. 하나는 앞서 말한 보물 제614호로 지정된 사천매향비이며, 다른 하나는 향촌동 하향마을에 위치한 시도유형문화재 제288호 삼천포매향암각(三千浦埋香岩刻)입니다.

삼천포매향암각과 간련해서 인터넷 백과사전을 뒤져봤더니 재미있는 내용이 참 많네요. 우선 23행 174자로 되어 있고 태종 18년(1418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이 암각비문을 해석하지 못해서 ‘향포산 처녀바위 글’이라 불렀고 향토사연구자인 문옥상님에 의해서 밝혀졌다고 합니다. 매향을 한 곳은 구량량(仇良梁)의 용두머리라고 하는데, 구량량은 선사시대 도시국가였던 지금의 늑도라고 합니다. 이렇게 지역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진 분들에 의해 과거의 편린이 서서히 드러나고 그것은 곧 애향심으로 이어지게 되겠죠.

앞서 이야기한 미당의 시 <침향>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수백 수천 년은 이 침향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 침향을 넣고 후손의 발복을 기원하는, 수백 수천 년의 세월과 간절한 마음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다고 생각하니 괜히 가슴 한 켠이 뭉클하고 코끝이 시큰해집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