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으로 칠해진 얼굴에는 눈, 코, 입의 윤곽조차 없다. 희고 굵은 선으로 묘사된 사물들에서 묘한 강렬함을 느낀다. 말라비틀어진 로시난테를 굵은 선으로 묘사하니 기괴한 느낌조차 든다. 그 위에 타고 있는 주인공은 윤곽으로 볼 때 방패와 창을 들고 어깨가 강조된 갑옷을 입었는데 썩 전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말 앞 다리 때문에 약간 불안한 기운마저 느껴지는데 그가 바로 돈키호테다.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인 스페인 중·남부 고원지대인 라만차 지역 특유의 맑고 건조한 기후를 보여 주듯 하늘은 검푸르다. 거친 붓 터치로 검푸른 하늘이 더욱 강렬하고 그 위에 배치된 붉은 색 돈키호테 얼굴과의 대비가 선명하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근대미술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이라고 그를 격찬할 만큼 도미에가 근대 미술사에 남긴 영향은 크다. 드라크루와로부터 시작되는 인물과 사물의 세밀한 묘사의 생략이 도미에에 이르러서는 좀 더 과감해진다. 윤곽의 묘사에 있어 거의 미완성처럼 느껴지는 굵고 강렬한 터치는 훗날 야수파인 조르주 루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도미에는 1808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가난함 때문에 이렇다 할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1830년 시사 주간지 『라 카리카튀르 La Caricature』의 시사만화가로 데뷔하여 풍자만화가로 이름을 알린다. 하지만 국왕을 모독한 죄로 실형을 받았고 잡지도 곧 폐간되어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속이 좁은 모양이다.

영웅의 환상 속을 헤매는 주인공 돈키호테를 묘사한 세르반테스의 소설은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중세 기사도 패러디쯤에 해당한다. 1615년에 책이 출판되었으니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중세의 그림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인 셈이다. 이 그림의 강력한 주제는, 돈키호테의 그러한 비판적 모티브를 소설로부터 빌려온 다음 주인공 돈키호테를 다시 내세워, 이제는 19세기 말 근대의 새로운 흐름을 거스르는 귀족 세력들의 몽매함을 풍자한 도미에의 외침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지친 일상을 거친 붓질로 대담하게 그려낸 도미에의 회화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진한 휴머니즘이 배어 있다. 그림“삼등열차”에는 중심으로부터 유리된 민중의 고단한 삶과 그곳에서 발견되는 ‘소외’와 ‘무관심’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읽어 낼 수 있다.

우리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비록 구시대의 망상에 사로잡혀 어이없는 일을 감행하였지만 한편으로 그에게 묘한 인간적 매력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돈키호테의 영웅에 대한 망상이 돈과 권력으로 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바란 명예조차도 검불처럼 가벼운 것이기는 하지만, 낭만주의 화풍이 인상주의로 진행되는 과정에 있었던 도미에는 이 묘하게 얽힌 명예와 허상의 느낌을 강렬한 붓놀림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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