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걸 퐁파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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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걸 퐁파두르
  • 김준식 객원기자
  • 승인 2013.11.0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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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코테크의 그림들 ③

루이15세(루리 14세의 증손자)의 여성편력은 역사에 기록될 만큼 복잡했다. 하지만 그의 여자들 중 왕이었던 루이15세보다 후세에 더 유명한 사람이 바로 퐁파두르 후작부인이다. 타고난 미모와 능력으로 18세기 유럽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그녀의 35세(1756년) 때 모습을 당시의 궁정화가 프랑소와 부세가 그린 초상화이다.

배경은 실내다. 한껏 멋을 낸 후작부인 뒤에는 로코코 양식의 거대한 거울이 있다. 거울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그녀가 살았던 곳이 베르사이유 궁전이었는데 궁전의 방들을 거울의 방이라 할 만큼 각 방마다 거울이 많이 놓여 있었다. 그 궁전의 방들은 지금 가 보아도 거울이 많다.

거울에 비친 퐁파두르 부인의 머리모양은 ‘퐁파두르’라는 이름을 가진 헤어스타일의 하나로 정착될 만큼 유명하다. 그녀의 옷은 화려함의 극치다. 치맛단, 옷깃마다 장미꽃을 비롯한 화려한 꽃이 피어있고 손목에는 5줄의 진주팔찌가 있다.

▲ 퐁파두르 후작 부인 1756 프랑수와 부셰
특이하게도 그녀의 손에는 책이 들려져 있는데 이는 그녀가 계몽사상과 백과전서파에 심취하여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임을 암시하고 있다. 앞 쪽 콘솔에 있는 깃털 펜이 한 번 더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는 듯하다.

부세는 파리 출생으로서 궁정화가가 되어 퐁파두르의 총애를 받아 화단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주로 그리스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요염한 여신의 모습을 그렸고, 또 귀족이나 상류계급의 우아한 풍속과 애정장면을 즐겨 그렸는데 특히 물체에 반사된 빛의 묘사에 탁월한 재주를 보였다. 이 그림에서도 섬유의 구겨짐과 질감이 사진처럼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실내의 빛을 반사시키는 저 풍성한 치마를 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엄청난 압박의 코르셋을 착용했을 것인데 그 때문인지 후작부인의 표정은 밝고 화사하기 보다는 살짝 굳어 있다. 궁정의 엄숙함 때문인지 신체 노출은 자제하고 가능한 화려함과 위엄을 강조하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그녀의 삶이 보통의 궁정여자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삶에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았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당시 궁정의 다른 여인들이 오로지 왕의 총애를 바라면서 삶을 소진하는 것과는 달리 퐁파두르는 정치 문화적인 활동으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녀의 예술적 영감으로 탄생한 프랑스의 세브르 도자기의 붉은 빛을 ‘퐁파두르 장밋빛’으로 부를 만큼 그녀의 미적 감각도 뛰어 났다. 시대를 앞서가는 그녀의 이상주의자적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작가 부세는 퐁파두르의 시선으로 그 모든 것을 표현했을 것이다.

독일의 3대 미술관이자 세계 6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알테 피나코테크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유럽의 세계적인 회화들을 소유하고 있는 이 미술관은 14~18세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보티첼 리, 다빈치, 라파엘로, 렘브란트, 루벤스 등의 작품 07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유명한 화가들 의 방을 시대별, 나라별로 잘 정리해놓았으며, 근대 회화관(노이 에피나코테크)과 현대 회화관(모 던 피나코테크)이 나란히 있어 서양 미술사 전체를 한 장소에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피나코테크는 그리스어로 ‘그림수 집’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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