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삼천포에 빠질 만한 이야기 (2)

▲ ▲ 곤양군읍지(昆陽郡邑誌) 奎 10860 1899년경

여행을 상당히 자주하는 편인데, 이 여행이란 게 계획대로 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무리해서 볼 것 다보고 먹을 것 다 먹고 나면 당시에는 뿌듯할 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고생했다는 기억만 남네요. 그래서 이후에는 대표적인 관광지나 볼거리 한두 가지만 찾고, 그 지역의 맛을 찾는데 신경을 씁니다. 그게 오히려 추억이 되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사천에 대한 첫 기억은 굉장히 흐린 편입니다. 사천지역 특유의 향토음식도 없고 눈에 띄는 유명 관광지도 없으며 눈을 현혹케 하는 웅장한 경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스쳐지나가듯 살피면 참 무난한 도시구나……하는 느낌만 남게 됩니다. 여행자의 눈에는 이러한 곳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 편이죠. 다이내믹하다 또는 활기가 넘친다는 곳이 시선을 끄니까요. 학교를 졸업하고 십년 쯤 지나 동창회에 갔을 때, 그런 애가 우리 반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평범한 인상을 준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살피면 이렇게 멋진 곳도 없다 싶을 정도입니다. 사천만 물길을 따라 평야가 펼쳐지고 양옆으로는 마치 굽어 살피듯 산이 감싸고 있으니, 포대기로 아이를 소중히 감싸고 있는 엄마와 같이 굉장히 안온한 인상을 안겨줍니다.

백두대간의 정기가 소백산맥으로 이어지고 그 지맥의 하나가 흘러서 등허리를 이룬 곳이 사천입니다. 올해로 정명 600년을 맞는데, 이전에 신라 때는 사물현(史勿縣)이었고 경덕왕 대에 사수(泗水)였고요. 전체 면적은 398.21㎢이며, 재첩으로 유명한 하동의 섬진강처럼 가슴 속 깊숙이 사천만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연평균기온은 14℃로 제주도 다음으로 따뜻하며 시목(市木)은 은행나무라고 하지만 국도변에는 대체로 벚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풍수로 사천시를 잠시 살펴보면, 와룡산을 좌청룡으로 금오산을 우백호로 하며 저 멀리 남해 금산이 안산(案山)의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또 집 앞의 재복을 뜻하는 사천만이 있으며, 그 재물이 그대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수구막이를 나비 모양의 창선도와 남해섬이 하고 있습니다.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서북쪽(乾方)인데요, 매서운 겨울바람을 저 멀리에서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가까이는 봉명산이 든든한 아버지가 되어 막아주고 있습니다. 봉명산은 고종이 어명으로 산에 묘(墓)를 쓰지 못하도록 금하는 어금혈봉표(御禁穴封表)가 있는 명산 중에 명산이죠. 지세(地勢)만 보면 사천은 그야말로 복지(福地)입니다.

또, 풍수지리의 형태 중에 비룡망수형(飛龍望水形)이라고 있습니다. 용이 물을 바라보는 형국(形局)이라고 용혈복지(龍穴福地)를 뜻하는데요, 모두 다 알고 있듯이 사천은 누워있는 용(臥龍)이 물(사천만)을 바라보는 곳이니, 이런 곳을 그냥 둘 리가 없겠죠. 그래서 사천에는 조선 역대 왕의 태실을 보관한 곳이 두 곳이나 됩니다. 문헌에 의하면 조선 역대 왕의 태실(胎室)지는 12곳에 불과한데요, 이 중에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실이 자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조선왕조의 정기를 끊겠다는 일제의 소행으로 훼손되고 말았죠)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포근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 사천읍지(泗川邑誌) 奎 10868 1899년경

포근한 어머니의 이미지는 방위로도 나타나는데요, 사천시는 동남쪽(巽方)으로 뻗어가는 낙남정맥 하에 서남쪽(坤方)으로 형성돼 있고, 곤방(坤方)은 온순과 고요함 그리고 어머니를 상징하는 방위이기도 합니다. 넉넉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사에 흔들리는 아이를 어루만지며 조용하게 가정을 지키는 모습이죠. 시목(市木)인 은행나무의 뜻도 정숙, 장수를 뜻하니 참 여러모로 사천과 어울리네요.

이런 사천시가 항공과 조선 산업 등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이른 봄을 뜻하는 동북방(坎方)에서 큰 길이 열리고 생동하는 기운이 밀려드니 누워있던 용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 하네요.

사실 이런 풍수지리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눈이 즐거우면 마음이 즐겁고 마음이 즐거우면 몸에도 좋다고 하는데, 한려수도를 굽어보는 산과 푸른 빛깔의 바다가 있으니 눈과 마음이 어찌 아니 즐거울까요. 당연히 몸도 좋아지겠죠.

추울 때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고 더울 때는 서늘한 바람을 찾듯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기운을 보해줄 곳을 스스로 찾아갑니다. 이렇게 지치고 힘들어, 거친 풍상에 상처를 입어 누군가가 찾아올 때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들을 안아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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