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청소부 할머니의 나무

학교는 언제나 깨끗하고 조용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난대요. 좀 지저분하고 시끄러워도 재밌을 것 같은데, 선생님들은 우리와 생각이 좀 다른가 봐요.
오늘은 선생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어요. 모두가 열심히 청소하는 시간에 나와 진수가 교실에서 술래잡기 놀이를 했거든요. 게다가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엎지르기까지 했지 뭐에요.

"이 녀석들! 당장 그만두지 못해?"

벼락같은 야단소리에 어찌나 놀랐던지 심장이 발바닥 아래로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다행히 회초리를 맞거나 복도에 꿇어앉는 벌은 받지 않았어요. 선생님께서 많이 바쁘셨던 모양이에요.

"김진수는 운동장 주변의 잡초를 뽑고 문진곤은 화장실 청소하시는 할머니를 도와드리거라. 선생님이 나중에 직접 검사할 거니깐 꾀부릴 생각하지마!"

그리곤 교실을 나가버리셨어요.

"차라리 회초리를 한 대 때리시지, 화장실 청소라니……."

"이를 어쩌냐? 고생해라."

진수는 웃음 띤 얼굴로 교실을 빠져나갔어요. 난 울상을 짓고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발목에 자전거 바퀴 하나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걸음이 무거웠습니다.
화장실은 왠지 꺼림칙한 곳이죠. 냄새도 나고, 조금만 어두워져도 귀신이 나타날 것처럼 으스스하거든요. 난 화장실 문고리를 붙잡고 서서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냥 도망가 버릴까?"

그때였어요. 갑자기 화장실 문이 ‘드드륵’하고 열리는 게 아니겠어요? 발바닥 아래에 떨어져 있던 나의 심장이 이번에는 땅콩처럼 조그맣게 쪼그라드는 것 같았어요.

"으악!"

난 비명을 지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말았죠. 화장실 안에서는 빨간 고무장갑을 낀 할머니가 서 있었어요. 한 손엔 비누거품이 뚝뚝 떨어지는 수세미를 들고 있었지요.

"웬일이니? 볼일 보려고?"

할머니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 살짝 길을 비켜줬어요.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화장실로 들어갔어요. 어차피 ‘벌’이란 건 얼른 받고 끝내는 게 좋은 것이니까요.
난 천천히 지퍼를 내리고 소변기 앞에 섰어요. 그리고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었어요. 시간이 얼른얼른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할머니는 소변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열심히 수세미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면대 앞에서 손을 씻었어요. 비누거품을 잔뜩 내서 아주 천천히 씻었는데, 시간은 내 마음처럼 빠르게 흘러주지 않았답니다. 난 어쩔 수 없이 소변기를 닦고 있는 할머니 뒤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뭐라도 좀 시켜주세요!’ 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죠.

"뭐 필요한 거라도 있니?"

한참 만에 뒤를 돌아본 할머니가 나에게 물었어요. 그건 내가 해야 할 물음인데, 할머니가 먼저 한 탓에 난 갑자기 할 말을 잊고 말았어요.

"음……. 그냥…….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 없을까요?"

간신히 이렇게 이야기하곤 할머니의 눈치를 살폈어요.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고무장갑을 벗으셨어요.

"아이구, 착하기도 해라. 넌 이름이 뭐니?"

그리곤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그 순간, 비누거품이 뚝뚝 떨어지던 수세미와 보기만 해도 냄새가 풍기는 고무장갑이 생각났어요.

"으악!"

나도 모르게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어요. 비명소리에 놀란 할머니는 한 걸음 물러섰어요. 방금 전까지 웃음이 가득 담겨 있던 할머니의 눈 속엔 어둡고 깊은 물기가 맺히고 있었어요. 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미안해져서 심장이 꽁꽁 얼어붙는 것 같았거든요.

"이 할미가 괜히……."

할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하시던 일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 후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죠. 차라리 선생님처럼 야단이라도 치셨더라면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을 텐데 말이에요.

"제 이름은 진곤이에요."

그리곤 옷소매를 걷고 열심히 청소를 시작했어요. 세면대에서 물을 길어다 날랐고, 쓰레기통을 비우기도 했어요. 쓰레기통 속에 있던 화장지가 손에 닿았을 땐 잠시 소름이 돋기도 했지만, 꾹 참아 보기로 했습니다. 할머니 앞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순 없었으니까요.

"녀석, 제법인 걸?"

잠시 서서 이마의 땀을 닦던 할머니가 다시 웃어 보이셨어요. 꽁꽁 얼어붙어 있던 내 심장도 스르르 녹는 것 같았죠. 할머니가 내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어쨌든 할머니와 친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어요.

"저 사실 지금 벌 받고 있는 거예요. 청소시간에 친구랑 장난을 쳤거든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며 난 싱글벙글 웃었어요. 원래 친한 사람들끼리 비밀이 있으면 안 된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문득 할머니의 비밀이 궁금해졌어요.

"할머니,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 봐도 될까요?"

"그러렴."

할머니는 소변기에 물을 부으면서 대답하셨어요. 목소리가 꼭 노랫소리처럼 흥겹게 느껴졌어요.

"할머니는 무슨 잘못을 하셔서 매일 이렇게 화장실 청소하는 벌을 받으시는 거예요?"

할머니는 한참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셨답니다. 등을 보인 채로 그렇게 서 있기만 하셨어요. 나도 입술을 살짝 깨문 채 가만히 서 있었죠. 괜히 여쭤봤나 싶어서요. 아직 비밀을 주고받기엔 너무 이른가 봐요.
하지만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할머니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엷긴 했지만, 입가에는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으니까요.

"벌이라니? 이 할머니는 지금 상을 받고 있는 중인걸?"

"화장실 청소가 상이라구요?"

뜻밖의 대답에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지."

"일이 즐겁다구요? 그럼 할머니는 공부하는 것도 즐겁겠네요?"

"그럼, 즐거운 일이지."

할머니는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대답만 하셨어요. 일과 공부가 즐겁다니, 그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난 공부보다 집에서 노는 게 더 즐거운데 말이에요.

"세상엔 건강하지 못한 사람도 많고, 건강하다고 해도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런데 난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도 누구보다 건강하고, 이렇게 일까지 하고 있으니 이게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겠니."

그리고는 창문을 활짝 열었어요. 파랗고 높은 가을 하늘이 액자처럼 창문에 담겨 있었어요. 파란색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것같기도 했어요.

"이리 와서 저길 좀 보거라."

할머니는 창문 아래에 양동이를 엎어 놓고 나에게 손짓을 했어요. 난 얼떨결에 양동이를 밟고 올라섰어요. 창밖에는 넓은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고, 옆반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체육을 하고 있었어요.

"저 커다란 나무를 누가 키웠을까?"

운동장 근처에 서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물으셨어요.

"교장 선생님이 매일 나무에 물을 주시죠."

"아니, 저 나무를 저만큼 키운 건 따뜻한 바람과 시원한 빗물이란다. 햇볕과 빗물이 부지런하지 못했더라면 나무는 금세 말라 죽어 버렸을 거야."

"바람과 빗물이 부지런하다구요?"

난 할머니가 가리킨 나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어요. 두 귀는 쫑긋 세우고 있었죠. 오늘 할머니가 대단한 비밀을 알려주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바람과 빗물이 꼼짝 않고 한 곳에만 머물러 있다면 어떨까?"

"……."

난 대답대신 침을 한 번 꿀꺽 삼켰어요.

"나무도 사람도 아마 살아남지 못할 거야. 바람과 빗물이 저리 부지런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따뜻하고 행복한 것이지.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저도 나무를 키워야 하나요?"

큰맘 먹고 한 말인데, 할머니는 큰소리로 웃기만 했어요. 그 순간 내 얼굴은 당근처럼 빨갛게 달아올랐어요.

"그래, 나무를 한 번 키워보렴. 진곤이는 어떤 나무를 키우고 싶니?"

"글쎄요. 전 나무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걸요?"

"그럼 이 할머니가 키운 나무를 한 번 보여줄까?"

"할머니의 나무가 학교 안에 있어요?"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밖을 두리번거렸어요.

"자, 보거라. 저 녀석이 바로 이 할머니가 키운 나무란다."

할머니는 창밖으로 두 팔을 내밀어 놓고 힘차게 흔들기 시작했어요. 마치 나무를 부르는 것처럼요. 난 운동장 주변에 서 있는 나무들을 빠르게 훑어보고 있었어요. 어쩌면 저들 중에 한 그루가 할머니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올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끝내 나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다만, 아이들과 섞여 공놀이를 하고 있던 옆반 담임선생님이 우릴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어요. 할머니의 얼굴에 가득한 웃음이 바람을 타고 건너갔는지, 운동장 한 가운데에 서서 손을 흔드는 선생님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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