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고려 현종 부자상봉 기념음악축제' 끝자락에 남는 씁쓸함

'2013 고려 현종 부자상봉 기념음악축제'의 한 장면

16일, 17일 양일 간 정동면 소곡리 사천강 소곡유원지에서 펼쳐졌던 '2013 고려 현종 부자상봉 기념음악축제'가 폐막했다. 흥겨운 화합의 한마당으로 진행된 주민노래자랑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이번 음악축제는 대중가요를 비롯해 클래식, 전통민요 등 다양한 장르의 퓨전 음악들을 선보여 음악 애호가들은 물론이고 일반 관람객들에게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부대행사로 특산물 전시 및 판매를 비롯해 떡메치기, 뗏목타기 등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돼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소곡마을 음악축제 행사장 인근에 학촌마을주민들이 단합대회를 하고 있는 모습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번 음악축제는  '고려 현종 부자상봉'을 재조명하는 한편 대외적으로 이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지역사회의 축제문화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상황에서 지역사회 예술인들과 주민, 그리고 외지 관광객들이 함께 어우러졌다는 점에서도 좋은 평가가 들린다.

이균철 학촌마을 이장

그러나 행사 과정에서 소곡마을과 학촌마을 사이에 일어난 작은 소란은 이 음악축제가 더욱 발전하기 위한 해결과제이자 성장통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행사 첫 날, 음악축제가 열린 소곡유원지 입구에는 본 행사와 별도로 학촌마을 주민들의 단합대회가 열렸다. 행사장 무대 스피커와 학촌마을 단합대회 천막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각각 다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이는 첫 날 행사를 마친 밤 10시까지 계속됐다. 영문을 모르는 관람객으로서는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이번 음악축제의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고려 현종 부자상봉길'의 소재지와 관련한 각 마을의 입장차 때문이었다. 부자상봉길인 고자곡(顧子谷) 고개는 현재의 학촌마을에 있는데, 이를 소재로 한 음악축제를 인근의 소곡마을에서 개최했다는 점이 학촌마을 주민들을 서운하게 했던 것이다.

16일 행사장에서 만난 이균철 학촌마을 이장은 "고려 현종 부자상봉길은 분명히 우리 학촌마을에 있는데, 소곡마을에서 개최한 음악축제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이를 명확하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 마을주민들을 서운하게 했다. 우리도 내년부터 특성화 된 축제와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데, 이번 일 때문에 주민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며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또 "행사준비 과정에서 각 마을 사이에 충분한 대화가 있었더라면 외부 손님들을 모셔 놓고 이런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 했다.

 
   
 황종환 소곡금자정체험마을 운영위원장
 

반면 이번 음악축제를 총괄한 황종환 소곡금자정체험마을 운영위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고자곡 고개가 어느 마을에 있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천시와 정동면의 역사유산이었던 부자상봉길을 대내외에 널리 알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이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고려 현종 부자상봉길과 역사적 사실에 대해 소곡마을에서 충분히 알렸다"며 "어느 마을에서든 이를 활용해 즐겁고 풍성한 축제를 열어 볼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려 현종 부자상봉길'과 이를 활용한 문화행사를 두고 두 마을의 입장차는 뚜렷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앞으로도 두 마을 사이에 갈등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지탱하는 배움의 돌탑이라고 했다. 그 옛날 고자곡 고개에서 이뤄졌던 애틋한 부자상봉의 사연은 천 년의 세월을 넘어 아직 회자되고 있다. 그 이야기의 힘은 곧 세대를 뛰어 넘는 '소통'과 '감동'에 있다.

'고려 현종 부자상봉길'의 감동이 천 년을 이어오듯 소곡마을과 학촌마을, 학촌마을과 소곡마을 사이에도 소통을 통한 마음의 상봉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고려 현종 부자상봉의 유래

고려 8대 왕 현종은 성종 11년 성종의 누이 헌정왕후 황보씨와 태조의 여덟 번째 아들 왕욱(안종)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 안종은 사수현(현재의 경남 사천)으로 귀향을 가는 바람에 성종은 보모를 가려서 양육하게 했다. 현종이 두 살이 되었을 무렵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것을 불쌍히 여긴 성종은 아이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에 보모를 딸려 사수현의 숙부 안종에게 보내주라고 명하니 이로써 부자상봉이 이뤄졌다. 하지만 지엄한 왕명으로 죄인과의 상봉은 허용되나 함께 사는 것은 불가하였다. 이에 귀룡동(사천시 사남면)과 정동면 배방사를 고자곡(顧子谷) 고개를 통해 오가며 하루도 빠짐 없이 3년 동안 아들을 보러 다녔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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