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뉴엘 데 파야의 스페인 정원의 밤을 들으며

스페인 정원의 밤

1. 프롤로그 

▲ 음반 표지 사진. 루빈스타인 연주임을 알 수 있다. 루빈스타인은 폴란드 출신의 유명한 피아니스트다. 쇼팽의 재림으로 불리운다.

19세기말 스페인 음악 부흥운동에 영향을 받았던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 1876~1946)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아버지로부터 안달루시아의 피를, 어머니로부터는 카탈루냐의 피를 이어받았다. 베토벤에 심취했던 파야는 마드리드에서 명교수인 펠리페 페드릴 밑에서 작곡수업을 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고, 몇 편의 사르수엘라( 사설·노래·합창·춤 등으로 이루어진 에스파냐의 악극)를 작곡한 뒤 1907년부터 1914년 사이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여기서 그는 라벨, 드뷔시, 뒤카, 알베니스와 같은 작곡가와 리카르도 비녜스(Ricardo Viñes)와 같은 피아니스트와 교류하며 자신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1905년에 완성한 베리즈모(19세기 후반의 이탈리아 오페라에 일어난 운동. 졸라, 플로베르, 입센 등의 문학적인 리얼리즘 영향이 음악에 나타난 것)계열의 오페라 [허무한 인생]을 개정하여 1913년 프랑스 니스에서 초연하여 주목을 받았고,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사랑은 마술사](1916)를 초연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발레단과의 협력으로 [삼각 모자](1919)와 같은 무대음악을 작곡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다.

파야 부모의 출신지인 안달루시아와 카탈루냐의 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 그 이유는 이 지역적 문제가 근세 스페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스페인에는 그 영향이 큰 문제로 남아있다.

카탈루냐지방에는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19세기 초부터 섬유산업을 주축으로 하면서 근대공업이 발달하여 시민사회의 형성이 진행되었다. 이에 비하여, 지역적으로 산맥이 가로놓여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카스티야 및 안달루시아의 두 지방에는 여전히 교회 ·지주 ·귀족의 지배하에 반봉건적 농촌사회가 유지되었고, 역대 정부의 권력기반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카탈루냐 지역에서 생산되는 공업생산품이 카스티야와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팔리지 않아 일찍부터 외국으로의 수출에 의존했는데, 정부가 안달루시아 지역 지주의 이익보호(외국 농산물의 수입을 하지 못하도록)를 위하여 만들어 놓은 관세장벽은 카탈루냐 노동자들에게 공급될 수 있는 값싼 외국산 곡물의 수입을 막았다.

그렇게 되자 카탈루냐의 공업제품을 농산품과 교역하던 외국에서는 자국의 농산품이 팔리지 않자 카탈루냐 상품의 수출이 어렵도록 카탈루냐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였다. 이러한 사태는 카탈루냐지역 도시노동자의 생계비 상승과 실업률의 증가 등으로 전체 카탈루냐의 산업가(産業家)와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상황은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반(反)정부 ·반 중앙집권의 기운이 조성되게 했고 외교 ·군사 ·통화를 제외한 국가주권의 대폭적인 카탈루냐로의 이양에 의한 고도의 지방자치권 획득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연방공화정의 수립과 카탈루냐어의 공용화(公用化)를 요구하였으나,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1920년대 반정부운동은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을 지도이념으로 삼은 카탈루냐의 노동운동의 영향으로 사회혁명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이런 분위기를 겁낸 카탈루냐 산업가 층은 정부와 손을 잡기에 이르렀고, 1930년대 이후도 지방적 요인과 계급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대립구도를 형성하였다. 1977년에는 1938년 이래로 총통 프랑코에 의하여 박탈되었던 자치권이 회복되었다.

2. 스페인 정원의 밤.

Nights in the Gardens of Spain(Noches en los jardines de Espaua)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의 왕궁, 알 함브라(붉은 성이라는 뜻)는 타레가의 독특한 트레몰로 주법(현을 떨듯이 연주하는 방법)으로 연주되는 기타독주곡 “알 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유명하다. 알 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스페인 특유의 이국적 느낌이 살아있는 기타 독주 음악이다.

파야의 음악은 그러한 스페인의 특수한 역사 문화적 환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음악인데 타레가와는 달리 피아노 협주곡 형식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파야 스스로 “교향적”이라는 부제를 사용했는데 이는 작곡자 스스로 음악 전반에 일관된 주제 의식을 부여하고픈 의도였을 것이다.

1부 헤네랄리페에서(En el Generalife) 

▲ 헤네랄리페 정원의 좁은 수로

▲ 헤네랄리페 정원의 치밀하게 계산된 분수

이글거리는 태양은 사라지고 어둠이 가득히 내려앉은 밤, 녹턴(야상곡)의 분위기 물씬 풍기는 전주를 들으면 붉은 마법 같은 그라나다 성채와 기하학적인 문양의 헤네랄리페(낙원의 정원) 정원의 좁은 수로위로 쏟아지는 꿈같은 별빛이 연상된다.

관악소리가 현악의 트레몰로를 따르는 중에 어디선가 영롱한 피아노 소리가 등장한다. 스페인 특유의 느낌을 피아노 트릴(트레몰로와 비슷한 주법)로 표현하고 있지만 분명 피아노 음악은 드뷔시 풍이다. 드뷔시의 녹턴에서 보이는 낭만적 분위기를 그대로 묘사하는 가운데 소리를 줄이고 갑자기 키우는 방법적 차이를 통해 파야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원의 작은 분수에서 흩어져버리는 물방울들이 불빛과 어울려 만들어내는 알 함브라 궁전의 밤 풍경은 피아노의 몫이다. 저음과 고음을 이리 저리 움직이다 오케스트라를 불러들여 현악의 우아함으로 관악의 비장함으로 이어지다가 정적 속에서 다시 피아노의 트릴이 빛을 발한다.

교향악적 거대한 주제의식이라고 보기에는 미약하지만 중간 중간 일관된 몇 소절은 분명 작곡자의 의도한 주제라고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그라나다의 역사, 그리고 안달루시아의 문화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2부 먼 옛날의 무곡(Danza lejana)

스페인, 특히 안달루시아 지방의 무곡이 바로 플라멩고(코)이다. 드뷔시는 189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이 음악을 듣고 “이베리아”라는 명곡을 남겼다. 플라멩고의 어원은 불이라는 것이 유력한데 단지 붉은 색 의상을 입고 추는 정열의 춤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제로 플라맹고를 보면 삶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깊이와 절도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파야도 이 부분에 초점을 두고 작곡한 듯 춤곡을 묘사하기 보다는 비장함이 엿 보인다.

피아노의 음악이 고저를 유도하지만 현악은 나름의 방향대로 움직이고 관악은 역시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난삽할 것 같은 악상은 이내 피아노의 유도에 따라 큰 흐름으로 연결되고 1부의 음악에서 느끼는 미스터리함을 배경에 깔고 3부로 이어진다.

3부 코르도바의 시에라 정원에서(En los jardines de la Sierra de Córdoba)

 

▲ 코르도바의 유대인 골목에서 보이는 파란색 이슬람식 탑.

돌연 무대는 그라나다에서 코르도바의 시에라 정원으로 옮겨진다. 코르도바는 안달루시아 주도인 이 도시는, 1236년 기독교 세력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이슬람제국(우마야 왕조)의 영토였다. 따라서 거대한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있는 서양의 도시라는 특이한 풍경을 연출할 뿐 만 아니라 거리 곳곳에 이슬람 문화의 향기가 배어있다. 특히 모스크 곳곳에 보이는 아라베스크 무늬는 묘한 여운을 남기는 미스터리한 방법으로 음악화 되었다.

2부의 여운을 그대로 가져와 화려한 서주부를 거쳐 피아노의 글리산도(미끄러지듯이 음계를 오르내리는 주법)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한 때 번영을 누렸던 이슬람 제국의 영화와 이제는 몰락한 그들의 폐허위에 밤 별빛처럼 흩어지는 정원의 불빛에 대한 묘사라고 짐작해 본다.

역시나 피아노 트릴은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되는데 1, 2부와는 달리 매우 장중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배경을 채운다. 강력한 피아노 타건을 따르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고요함과 소란스러움을 절묘하게 오가다 현악의 서정으로 이어지는 중간 중간, 피아노의 음색이 별빛처럼 반짝인다.

이를테면 스페인의 밤이 가지는 혼재된 문화적 배경에서 오는 미스터리함을 마지막 부분 피아노의 독주에 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묘사하고 있으며 파야, 그가 살았던 인상파 음악의 여운을 가미하면서 고요하게 음악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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