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의 안타까운 사랑

▲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페데리코 세르벨리(Federico Cervelli)의 작품. 출처: 위키백과
요새 들어 국사교육의 허술함이 다행스럽게도 비판받고 있습니다. 대학입시에 국사가 뭐 그다지 점수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입니다.

어릴 적 기억을 돌아봐도 그리스 로마신화가 더 잘 아는 이야기였지 우리나라의 신화는 별로 머리에 남은 게 없으니까요.

한국동란 이후 미국식 교육 받고 온 대통령과 학자들의 폄훼에 우리나라는 그저 하급의 문화를 지닌 열등한 나라라는 분위기가 깔려있었지요. 시스템이 다른 우리에게 학문적 구분을 들이대며 과학이니 미개니 낯선 말로 스스로를 뭉갰습니다.

그들의 눈에 호랑이, 까치, 썩은 동아줄이나 등장하는 신화가 후줄근해 보였겠지요. 우리의 악기도 허접했을 것이고요. 그에 비해 서양은 건물도, 철학도, 온갖 예술도 멋지기 이를 데 없었겠지요.
그런데 걱정되는 일은 지금도 이런 서구 사대주의가 여전하다는 겁니다.

독일어 공부하겠다는 생각 접고 다른 공부할 때입니다. 미국서 학위 해 온 선생들이 툭하면 날리는 비교,

“한국사람들은요...”

이 사람들 한국말 굉장히 잘해요. 참 내.
아이구! 저 사람들은 한국사람 아닌가봐, 미쿡서 박사 해 이 땅에서 풀어먹기를 참. 정신 나간 사람들이 무슨 강의를 한다고, 환장하겠습니다.

이런 자괴감은 비단 우리나라 뿐은 아닙디다.
중국에서 미국유학을 거의 처음 한 사람이 쓴 수필은 찌질한 중국의 얼러뚱땅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너무도 싫었던 모양입니다.

중국의 공산당이 공화국을 설립하자 대만으로 옮겨 간 호적(胡適 1891-1962)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差不多先生(대충, 그게 그거라는 의미)>이라는 글에 보이는 중국인, 참 기도 안 차요. 백설탕 사오라니까 누런 설탕 사와 야단치면 ‘설탕이면 됐지 희든 누렇든..’ 계산 맡기면 十인데 千을 써놔요. 주인이 펄펄뛰면 ‘겨우 한 획 차이인데 뭘’ 이러고 개기지요.

콜롬비아대학에서 8개월 유학한 거의 최초의 서양 물 먹은 사람 눈에 이런 형상은 구제불능으로 보였겠지요. 그래서 <差不多先生>의 기질이 중국 말아먹었다는 게 호적의 주장이지요. 마지막에 슈가코팅은 조금 해줘요.

그래도 중국은 그리스 로마신화에 우리처럼 목을 매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나 봐요. 노신 같은 위대한 스승, 그 분의 [고사신편] 등을 보면 역시 중심을 잡은 위대한 정신은 빛이 바래지 않습니다.

이런 서구 사대주의 교육받고 자란 저도 예외 없이 범생이답게. 그리스 로마신화 줄줄 꿰었더랬어요.
그 신화 가운데 많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입니다.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얼마나 잘 켰는지 나무도 가지를 흔들고 사나운 짐승도 순하게 고운 소리에 착해졌다지요. 뭐 음악의 신인 아폴론에게 배운 솜씨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옛 이야기 공식에 따라 결혼한 그는 아내를 무척 사랑했겠지요, 물론 굉장한 미인이었을 테고요. 오죽하면 양치기 녀석도 눈은 있어 치근덕거렸을까요.

결국 하데스가 관장하는 지하세계로 끌려간 아내가 보고파 바닷가를 거닐며 리라를 연주하며 아픈 가슴을 달랬고 그 슬픈 음악소리에 조약돌도 눈물을 흘렸다지요.



이래서 신화를 좋아합니다. 생물 무생물 구분두지 않고 인간과 같은 감정을 내보이니까요. 신을 만나고 신이 되고 하는 존재가 질투하고 쌈닭처럼 성질내고, 보복은 또 얼마나 끔찍한지요. 게다가 아름다운 여신이 있으면 짝이 있든 없든 일단은 집적거리고 봅니다.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가 얼마나 울고 다녔으면 지하세계로 내려가 아내를 데려오라는 허락을 받아냈을까요, 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요새말로 거의 ‘진상’에 가까운 간절한 애원에 ‘옛다, 인심’했을 듯도 해요. 사랑하는 사람 구해내는 데 이 정도도 안 할까요. 저라면 더 했을 겁니다.

근근덕신 어두운 지하를 내려갑니다, 오로지 아내 구해올 일념으로 말입니다.
하데스에게서 단단히 들은 주의는 지상세계로 올라올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 것’이었습니다.
신화나 전설에서 주인공들이 말을 듣나요? 오르페우스도 마찬가지지요. 이런 이야기는 꼭 막바지에서 사고를 일으킵니다. 그것도 아주 크게요.

자기 뒤를 따라오는 에우리디체를 안 쳐다봤지만 아내가 오해하는 바람에 너무나 보고 싶어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본 거지요.

어릴 적 이 신화를 읽으면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발을 굴렀습니다.

“에이구, 조금만 참지!”

밥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이제 어쩌란 말입니까. 숨이 막혀요.
다 커서 생각하니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그 새를 못 참아 돌아봤을까’ 이해는 됐습니다.
하지만 뒤에 붙는 말은 남지요.
 
“그래도 그렇지. 자발스럽기는 쯧 쯧...”

이런 심정은 비단 저만은 아닌가봅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글룩((Gluck, Christoph Willibald 1714∼1787)도 이 신화의 안타까움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나 봐요. 오페라로 만들었지요.

요즘은 전곡을 공연하는 일은 드물고 그 가운데 몇 곡이 흔하게 들립니다.
<정령들의 춤 (이 표현 좀 바꾸면 좋겠어요. ‘요정’, 뭐 비슷하지만 일본식 표현인 정령은 좀 그래요.)> 이 곡은 <멜로디>라고도 하는데 주로 플루트로 연주하지요. 음악 처음 접할 때 들으면서 천상의 소리 같았지요. 더러 바이올린 연주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애절한 것은 역시 오르페우스의 애원입니다.
<에우리디체를 돌려주오.> 안타까워라.
오르페우스가 지하세계로 끌려 간 고운 아내를 그리며 부른 비탄의 노래는 바닷가 조약돌조차 울렸다잖아요.



맑고 투명한 테너인 티토 스키파가 막힘없이 가슴을 열어 통사정을 합니다. 주로 테너가 부르지만 더러는 여성도 불러요. 글룩 시대에는 그렇게도 했다나 봐요.

앞서 언급한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두성발성의 이 노래는 가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정말이지 이런 애원에 독한 하데스라도 겁나서 비록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은 붙이지만 지하세계로 아내 구하러 가라는 허락을 해 줄 밖에요. ‘역시 칼라스다,’ 이런 감탄이 절로 나게 말입니다.

1930년대 세상은 뒤숭숭했지만 이탈리아를 주축으로 미성의 성악가는 그리도 많은지, 남자관계 복잡한 저로서는 이 시기의 리릭 테너에 홀랑 넘어가 해가 지면 지는 대로, 비가 내리면 우울한대로, 꽃이 피면 피는 대로 세월아 네월아 철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노래나 연주 들으면 상처받고 슬픈 가슴이 가라앉는데요.
하긴 제가 광산입니까, 철이 나게요.
 

<임계재의 음악놀이터>는 음악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았거나 감동했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공간이다. 글쓴이 임계재 선생은 중국문학을 전공한 작가이면서, 현재 숙명여대에서 중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학창시절, 전공 공부보다는 음악듣기에 더 빠져 있었다는 게 글쓴이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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