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재의 음악놀이터]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4월처럼 여러 사연과 천지조화가 섞인 달이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사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 옮겨가기 쉬운 일은 아니니 계절 바꾸기 또한 문문하게 자리를 내주기가 싫어서 한바탕 심통이라도 부려야 체면이 서는 모양이지요. 4월의 날씨가 대개 그렇더군요.

서너 해 전, 역시 4월이 왔건만 무슨 조화속인지 비 쏟아지다 천둥도 우르릉거리며 고약을 떠는 오후, 전화기에 낯선 번호가 떴습니다. 수업 없는 날이라 핑계 삼아 퍼지려다 혹시 싶어 받았습니다. 잘 못 알아듣겠는 목소리.

"누구신지요?"

아, 건건찝찔하게 낯을 익힌 분이었군요.

"어쩐 일로 제게 전화를 다 주시고.."

"아무개 교수님을 아세요? 피아니스트인데."

"아, 네에. 그 분은 제가 잘 알지 못하는데요?"

"오늘 저녁에 광화문에서 연주회가 있는데 무소르그스키... 뭐 그래요."

"아, <전람회의 그림> 전곡을 치시나보군요."

"아니, 전람회가 아니고 음악회라니까요!"

이 말 끝에 저는 미처 종료하지 못한 전화기를 붙들고 자해를 시작했습니다. 혀 깨물고 허벅지 꼬집고, 온 몸을 비틀어도 ‘끅끅’ 소리가 치미는 웃음을 막을 길이 없어서였습니다.

"음악 좋아하시는 분이라 함께 갔으면 해서요."

"아유, 감사해요. 이따 뵙지요."

간드러집니다. 내심으로는 모처럼 <전람회의 그림> 전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라 선뜻 응한 겁니다.

고약스러워 언제 변할지 모를 날씨를 염두에 두고 잘 안 입는 비단코트에 뾰족구두까지 신고 다 늦은 시간에 번화가로 나갔지요. 뒤늦게 받아 든 프로그램에 역시 ‘전람회의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익숙한 연주홀에 들어섰습니다.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연주자에게서는 부유한 티가 좔좔 흐르더군요.

"저 교수님(꼭 교수님이라고 칭하십니다.) 무슨 다이아몬드 모델이세요."

"그렇군요."

별로 가깝지 않은 남자 분 바로 옆에 앉아 연주듣기가 편할 수는 없습니다.
메세나운동을 펼치셨던 분, 고가의 악기를 자비로 구입해 재능 있지만 형편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무상으로 대여해 주시던 분이 늘 상 앉으셨던 자리 옆에서 <전람회의 그림>을 눈 빠지게 기다리며 1부 연주를 들었습니다. 옆자리 분위기가 '쌔'했지만 모른 척 했습니다.

 

기다리던 전람회입니다. 광고에서 자주 들리는 음악이기도 하지요.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이 그림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도입부인 ‘프로미나드’, 신바람 나게 피아노가 울어댑니다. 이어서 첫 번째 그림이 보입니다. 약간 기괴한 소리가 울립니다. 그런데 기괴한 또 다른 라이브,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 제 귀를 울리는 더 큰 소음은 코 고는 소리였습니다. 내가 미쳐!

혹시 90년대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을 기억하시는지요?

조그만 마을에 유일한 오락거리인 영화관 가기. 그 극장 이름이 바로 ‘시네마 천국’ 아닌가요. 기가 막히지요. 사람들은 몰려갑니다. 이 쏠림은 카뮈의 <페스트>에서 폐쇄된 마을에서의 절망적인 반복적 영화관 가기와는 전혀 다르게 이 동네는 즐거움을 동반한 소란이지요.

극장에 갈 돈이 없는 꼬마 ‘토토’는 틀림없이 ‘노동법 위반’임에도 영사실에 취직해 환장할 욕구를 채우지요. 관객 가운데 마을의 전속 심통쟁이인 중년남자의 관람태도 생각나세요? 입 벌리고 코골며 흠씬 자다가도 키스신만 나오면 법석을 치는 아저씨. 결국 그 아저씨는 극장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고 마을사람들은 그의 자리에 아저씨대신 꽃다발을 앉히지요.

영화의 바로 그 아저씨처럼 제 옆의 초대자가 코를 불어대는 겁니다, 물론 입도 벌리고요.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키에프의 성문’, 연주자가 온 힘을 실어 건반뿐 아니라 페달도 힘차게 밟아대는 장엄한 부분에서의 코고는 소리 역시 우렁찼습니다.

제가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이임에도 연주회에 초대받은 이유를 연주회가 끝나고 알게 됐습니다. 그날 연주자와 뭔가로 이어지는 이 양반에게 동행자를 소개하기에 저의 스펙이 아쉬운 대로 쓸 만해서 당첨된 것이었답니다. 언짢치는 않았습니다. <전람회의 그림> 전곡연주였으니까 말입니다.

이십 수 년 전 예술의 전당에 온 러시아의 거장 라자르 베르만의(그는 몸도 거장(?)입니다, 0.1톤을 가뿐히 넘을 체격으로 연주자 전용출입문을 간신히 뚫고 무대에 섰거든요.) 피아노를 부술 듯 두드리던 공연은 제게 몇 가지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남겼습니다.

무심한 듯한 얼굴에 오로지 피아노에 자신의 힘을 쏟아 붓는 연주모습은 객석의 청중에게 딴 생각을 허용하지 못하게 집중시킵니다. 한 마디로 ‘끽소리 말고’ 자신의 건반과 호흡하라 이겁니다.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던걸요.

<전람회의 그림>, 연주가 끝났을 때 넋 나간 듯 정신이 멍할 지경이었습니다.

자신의 온 힘을 쏟아 부은 정식 레퍼토리가 끝나자 탈진했는지 앙코르 연주에 응하려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관객의 ‘조르기’가 어디 갑니까. 발 구르고 휘파람 불고..

마지못해 다시 나온 그 양반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며 한 곡만 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였습니다. 그게 어딥니까!

슈만이 잔잔하게 흐르는 순간 맹하게 생긴 젊은 여성 하나가 손뼉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비엔나에서 1월 1일 열리는 [뉴이어 콘서트]의 가장 마지막 곡인 요한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 연주에 지휘자가 객석을 향해 함께 손뼉 칠 것을 권유하고, 관객들이 함박웃음을 띠며 신나게 박수치는 바로 그 행동이었습니다. 나치의 음모로 야기된 전통이란 것을 안 것은 몇 년 안 되는 사실이었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소통이 어려운 상대가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지요. 그런 사람은 자기가 읽은 ‘책’속의 내용이 진리의 전부라고 확신해서 우기기 마련일 테니까요. 그 젊은 여성의 행동이 바로 그런 경우였을 것 아닐까요. 이거야 나중 결론이고요.

순간 저는 연주회에만 신고 다니는 에나멜구두를 벗어들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기다린 연주회였는데, 더구나 피아노시모의 여린 음은 아껴 들어야하기에 숨도 조심스레 들이고 내는데 ‘저 무식한 인간이...’ 다행이 주변의 눈총을 눈치 챈 것인지 아니면 그나마 운이 좋아 저의 신발세례를 면할 운수였는지 손뼉 치기를 그만두더군요.

▲ 무소르그스키
공연 마치고 사인 받으러 대기실로 갔습니다. 그 무렵 마악 CD가 나돌던 시기였는데 저는 우직하게 그가 연주한 <전람회의 그림> LP를 내밀었습니다. 크기로 봐도 LP가 훨씬 크니 그의 사진도 더 잘 보이지요.

‘아! 이거..’ 이런 표정인 그에게 한글로 제 이름을 써달라고 했습니다. 못하겠노라 웃던 그에게 정말로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애교 작렬이었겠지요. 그런데 그 음반 어디 갔을까요. 아무리 찾아도 안 보입니다.

날씨 화창한 주말, 저는 드문드문 <전람회의 그림>을 볼륨 높게 틀어놓고 문 열고 먼지를 털어냅니다. 그림에서 그림으로 움직이는 ‘프롬나드(또는 프로미나드)’의 딸각이는 소리에 맞춰 여기저기 붙어있던 먼지를 내보다 보면 마음이 산뜻해집니다. 그러면 문 닫고 다시 한 판 돌립니다. 제대로 그림 감상할 요량으로요.

여러분도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래서 개운해진 마음 나누면 더 좋고요!

<임계재의 음악놀이터>는 음악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았거나 감동했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공간이다. 글쓴이 임계재 선생은 중국문학을 전공한 작가이면서, 현재 숙명여대에서 중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학창시절, 전공 공부보다는 음악듣기에 더 빠져 있었다는 게 글쓴이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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